유럽 재정위기 초기 진화 실패 … 프랑스·독일까지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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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그리스·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럽 중심부까지 위협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세계 9위인 스페인이 무너질 경우 프랑스·독일의 금융권이 충격을 받고, 불길이 대서양 너머 미국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나온다. 초기 진화에 실패한 유럽연합(EU)은 추가 대응책을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신용경색 재연=“채권시장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 한 스페인 은행 관계자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전한 현지 금융시장 분위기다. 국채 시장의 불안이 회사채 시장으로 옮겨 붙으면서 금융사와 일반 기업들도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졌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5월 그리스 재정위기 때와 흡사한 신용경색 현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외부 차입이 계속 막힐 경우 빚이 많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금융사들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스페인 정부와 금융권이 발행한 채권 중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2530억 유로 규모에 달한다. 이 중 부실 대출로 위기의 진원지가 된 스페인의 저축은행(카하)들이 감당해야 할 물량이 300억 유로 규모다. 카하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최근 5년물 기준으로 7%포인트 수준에 달하고 있다. 반면 스페인 최대 시중은행인 산탄데르의 CDS는 2.5%포인트 정도다. CDS프리미엄은 채권의 부도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로, 시장에서 카하를 그만큼 위험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채 규모가 유럽 2위인 이탈리아도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포르투갈의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씨티그룹의 빌렘 뷔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통신에 유럽의 위기가 일본과 미국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CB, 국채 매입 시사=향후 유럽이 취할 수 있는 조치로 거론되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체 7500억 유로 규모인 현재의 구제금융 재원을 대폭 늘려 ‘실탄 소진’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는 것이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 매입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여기에 국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 16개 유로화 사용국이 공동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나온다. 이와 관련,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달 30일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ECB 이사회가 2일 소집돼 국채 매입 프로그램의 장래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시장 전문가들이 유럽 정부들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에 대해 독일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로권 공동 채권을 발행할 경우 재정 부실국들은 지금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지는 반면 독일 같은 나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은행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를 다시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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