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남심 … 만년필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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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있는 문구류·선물용품 전문점 핫트랙스. 국내 최대 문구류 판매장 중 하나인 이곳은 올 8월 리뉴얼 후 재개장하면서 만년필 코너를 크게 늘렸다. 기존 11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던 것이 22개로 늘어났다. 이 회사 전 영업점의 올 1~10월 만년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1%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천호·미아·목동점에 있는 문구 편집매장 ‘디아스 스토리’의 만년필 매출도 올 1~10월 14% 늘었다.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이지형 문구 바이어는 “예전에는 선물용 포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자신이 직접 쓰려고 포장 없이 구입해가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핫트랙스 고급 필기구 담당 이세미 MD(상품기획자)는 “그동안 만년필과 같은 고급 필기구에 관심 없었던 20~30대 젊은 고객들이 매장을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열풍 속에 인기가 시들해졌던 만년필이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터넷 만년필 동호회인 ‘펜후드’ 회원 수도 지난해 8000명이던 것이 올해는 1만3000여 명으로 늘었다. 새로운 만년필 동호회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만년필 연구소’에서 매주 토요일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박종진 소장은 “처음엔 몇 사람 모이는 정도였지만, 요즘엔 50명 이상 참석한다”며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만년필이 새삼 인기를 끄는 것은 ‘남자들의 럭셔리’ ‘필기구가 아닌 액세서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디지털 시대에 필기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면서 만년필을 시계처럼 남들에게 자랑하는 액세서리로 여기는 이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가끔 쓰는 글씨를 더 멋있게 쓰고 싶어하는 욕구도 늘고 있다는 것.

 만년필 인기는 전통의 고가 만년필보다 중저가 만년필이 주도하고 있다. 가격이 5만~10만원대 브랜드인 ‘펠리칸’과 ‘파버카스텔’(사진) 등이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고객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것. 핫트랙스에서 올 1~10월 펠리칸과 파버카스텔의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 늘었다.

 최근에는 10만~15만원대의 중가대 만년필의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 핫트랙스 이세미 MD는 “전통적인 만년필 디자인에서 탈피해 젊은 고객 취향을 담은 제품이 많아졌다”며 “잉크 충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제품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3만~4만원대의 저렴한 형광색 만년필까지 등장했다.

 한 자루에 120만~130만원 하는 고가 만년필을 파는 매장도 등장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달 말 이탈리아 최초의 만년필 브랜드인 ‘몬테그라파’ 매장을 국내 백화점 중 처음으로 열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일부 제품은 한 자루에 1000만원을 호가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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