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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잘 만들고 싶다면 여성을 키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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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로 쓴 말이다. 다소 거창한 말로 시작했지만 자동차 산업도 이제 여성이 이끌어가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자동차 산업이 ‘남성의’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산업이라는 기존 사고 방식을 고집하다간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을 예로 들면 차를 살 때 여성이 직접 구매를 결정하거나 차종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약 3분의 2에 이른다. 이런 추세는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여성이 1000만 명을 넘어선 한국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실제로 차를 사는 사람은 남편일지라도 차종을 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설령 차종을 직접 선택하진 않더라도 특정 차종에 대해 ‘이 차는 싫다’라는 결정적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차량 구매에 대한 여성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남성 위주였던 기존의 차량 디자인과 편의 사양 개발에서 벗어나 보다 여성 친화적인 디자인과 편의 사양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업계를 위해서도 소비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자동차 산업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참신한 여성적 시각이 그 대안 중 하나다. 실제로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차는 치마를 입은 여성이 타고 내리기 편하도록 차체 높이를 일반 세단 수준으로 낮추는 등 세심한 배려를 했다.

 여성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첨단 편의장치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다른 차량에까지 장착되는 경우도 있다. ‘어라운드 뷰 모니터’가 그중 하나다. 차량의 앞과 뒤, 그리고 좌우 사이드미러의 밑에 180도까지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각각 한 대씩 총 네 대를 달아 차의 주변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영상으로 전달하는 장치다. 운전이 서툰 여성 운전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으면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하이힐을 신고도 편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액셀러레이터도 있다. 후진 주차를 돕기 위한 ‘리어 뷰 모니터’, 신발 높이에 따라 운전석 시트와 사이드미러가 자동 조절되는 ‘인텔리전트 포지셔닝 시스템(IPS)’ 등도 여성적 시각으로 자동차에 접근함에 따라 얻어진 성과로 볼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이 밖에도 여성이 선호하는 색상의 차량을 내놓고, 하이힐 등 여성 용품의 수납 공간을 마련하는 등 여성 고객에게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자동차에 여성적 시각을 더하려면 소비자로서의 여성만을 염두에 둬선 안 된다. 자동차 기업 내부에 여성 인력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여성 리더들이 자동차 개발·디자인의 핵심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닛산자동차의 임직원 현황을 예로 들어보자. 2004년 36명이었던 여성 매니저가 현재 1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업무 영역도 영업·고객서비스 등 기존의 사무직 업무뿐 아니라 생산·제조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여성에 눈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는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여성에 대해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산자로서의 여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 시스템을 여성 친화적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다른 부분에 노력한다고 해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