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차이나 사이클’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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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지난 9월 중국의 조선업체인 룽성(熔盛)중공업은 브라질 철광석업체인 발레(Vale)로부터 대형 화물선 12척을 수주했다. 약 15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다. ‘발레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조달할 수 있을까?’ 세계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며칠 후 베이징에서 답이 나왔다. 중국수출입은행이 전체 배 값의 약 80%(12억3000만 달러)를 선박금융으로 제공키로 한 것이다.

 중국-브라질의 경제 협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우한(武漢)철강은 최근 4억 달러를 투자해 브라질 광산지분을 인수했고, 오토바이업체인 리판은 브라질에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덕택에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투자국으로 등장했다. 브라질 경제가 올 상반기 8.9%나 성장한 것도 중국의 이 같은 ‘자금 살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거프 다이어는 이를 ‘차이나 사이클(China Cycle)’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중국에 힘입은 성장’이라는 뜻이다.

 ‘차이나 사이클’의 시작은 1990년대 아시아였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면서 한국·대만 등이 중국 경제와 더불어 성장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에 공을 들였다. 자원 확보가 목표였다. 자원외교는 중앙아시아·중남미, 심지어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중동 등으로 넓어졌다. 이들 지역에 막대한 차이나 머니가 뿌려지면서 ‘차이나 사이클’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의 우방인 유럽연합(EU)도 그 영향권에 편입되는 모습이다. ‘재정위기에 빠진 EU 국가를 돕겠다’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약속에 중국 인권을 비난하는 EU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차이나 사이클’에는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다. 국가(정부)와 기업·은행의 합작품이라는 점이다. 국유기업인 룽성중공업이 국가은행인 수출입은행의 자금을 지원받아 선박 12척을 싹쓸이 수주하듯 말이다. 중국은 이란과 그리스 등에도 배 값의 70~80%를 선박금융으로 내주기도 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밀치고 ‘조선(造船)대국’으로 부상한 이유다. 2조60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해외 시장 진출에 거침이 없다. 국가(정부)가 목표물을 정하면 국유기업이 달려간다. 총알(자금)은 국유은행이 지원한다. 국가-국유기업-국유은행의 ‘삼각편대’가 세계 시장을 융단 폭격하는 양상이다. 국가가 국유(국영)기업을 앞세워 경제활동을 벌이는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전형이다.

 이를 지켜보는 서방 기업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들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이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이에 꿈쩍할 중국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오히려 중국 내 비즈니스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할 형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코 꿰인 형국이다. “차이나 사이클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턴을 읽는 또 다른 키워드”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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