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투자 ABC] 사면 내리고 팔면 오르는 ‘인간지표’와 반대로 움직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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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요모조모 뜯어봐도 참 잘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있다. 주식에 관한 한 문제가 있다. 마치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듯하다.

 2009년 봄부터 지금까지 국내 주식시장은 거의 배 가까이 올랐다. 값이 떨어진 주식은 극소수다. 상식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주변에, 특히 개인투자자 중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는 별로 없다.

 이런 장에서 손실을 낸다는 것은 평범한 재주로는 불가능하다. 몇 안 되는 깨질 주식을 절묘하게 골라내야 한다. 아니면 오르는 주식도 손해나는 쪽으로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든가. 많은 개미 투자자는 이런 놀라운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런 재능이 DNA에 뿌리 박힌 사람들이 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자신의 재능을 믿고 움직이는 투자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인간지표’다. 인간지표들이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그들의 예상과 반대로 매매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잘 아는 어르신 중에 대표적인 인간지표 한 분이 있다. 섬유사업을 하시는 분이다. 외환위기의 한파도 비켜갔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탁월했다.

 2002년 사업이 안정되자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과는 사업과 달랐다. 남들이 손해 보는 것 이상으로 돈을 잃었다. 주식을 잘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신문을 탐독하고 각종 차트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래도 잃었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한진해운과 SK㈜(현재 지주회사 SK와 SK에너지로 나뉜 회사)를 적어도 1년 가져가면 수익이 날 것이라 권해 드렸다. 산 뒤에는 반드시 묻어 두라고 당부까지 했다.

 1년 뒤 이 종목들의 주가는 다섯 배가량 올랐다. 그런데 전화가 없었다.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분은 단타를 쳤다. 주로 고점에 사서 저점에 정확하게 팔았다. 주가가 5배 오르는 동안 원금은 반 토막도 안 남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런 분은 인간지표로 적격이다. 주변 가까운 사람을 인간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인정머리 없이 들릴 것이다. 하지만 증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시장이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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