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춘니(春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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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은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김종길(1926~ ) '춘니(春泥)'

'춘니'는 봄의 진흙. 1966년 작. 같은 해 다라니경 발견, 백마부대 파월, 문화혁명 시작, 소련 무인 우주선 달 착륙, 스트라빈스키 '레퀴엠 칸티클스' 발표. 그때의 신입생들 대사는 이제 잊혔지만 마음의 렌즈에 담긴 감정이 절제된 이 한 장의 사진에는 아직도 싱그러운 봄이 재잘거린다. 절제는 비루한 생활의 흔적을 지우고 삶에 새 살을 돋게 한다.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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