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세계는 성장에 목마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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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다음 주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최대 관심사는 여전히 환율전쟁이 될 것이다. 환율문제는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가까스로 봉합의 실마리를 찾았으나 정상회의에서 과연 어느 정도로 구체화된 합의안을 끌어낼 것인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G20 정상회의에선 재무장관들의 합의 내용을 추인하는 수준에서 환율문제가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해 보인다. 그 정도만 해도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공멸의 악순환은 일단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환율문제만 해결되면 세계경제는 앞으로 순탄한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실은 환율문제의 이면에 자리 잡은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세계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바로 세계적인 저성장(低成長)이다.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20의 정책공조를 통해 최악의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200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었지만 각국의 신속한 부양책에 힘입어 올해는 4%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세계경제가 다시 안정성장의 궤도에 들어섰다고 장담하긴 이르다. 당장 내년에는 3% 중반으로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여기다 올해 세계경제 회복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국들은 여전히 연간 1∼2%대의 낮은 성장률이 예상되는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 회복을 신흥국들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성장률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

 혹자는 선진국들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신흥국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문제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화로 얽혀 있는 세계경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수출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신흥국에 핵심적인 시장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의 소비는 신흥국들의 수출과 직결돼 있다. 선진국의 경기부진으로 소비가 줄면 조만간 신흥국들의 수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고, 그동안 수출 주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던 신흥국들도 성장이 둔화되거나 동반침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작금에 벌어진 환율전쟁의 근본 원인은 이 같은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선진국들이 경기가 괜찮을 때는 환율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불거지지 않았으나, 선진국의 경기부진이 계속되면서 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무역흑자국들의 환율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빠른 회복세를 보인 신흥국들이 수출보다 내수에 주력해 선진국의 수요 부족을 상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신흥국들이 수출 주도의 경제구조를 하루아침에 내수 중심으로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그 과정에서 나타날 성장 둔화와 고용 부진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중국이 내수 진작을 외치면서도 위안화 절상을 한사코 미루며 버티는 이유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눈앞에서 성장과 고용이 떨어지는 걸 내버려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선진국들의 성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소비가 영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인구의 노령화가 겹치면서 선진국들의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장기적인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에 단기적인 경기부진 요인이 겹쳐 세계경제의 성장둔화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추가 부양조치를 써서라도 경기를 되살려 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판에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줄인다며 긴축기조로 돌아섰으니 경기회복은커녕 침체를 부추기는 꼴이다.

 이제 G20 정상들은 눈앞의 환율전쟁을 막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성장 둔화라는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변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세계적인 성장 둔화는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 국민의 삶의 질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킬 소지가 크다. 성장 둔화의 공동운명을 타개하기 위해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계경제의 이런 흐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벌써 선진국 경기부진의 여파로 수출증가세가 꺾이고 성장률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가라앉는데 우리만 홀로 높은 성장을 구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장은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인 논의가 필요한 화두다. 세계는 아직 성장에 목마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