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어 교사(校舍) 뒤쪽에서 여학생의 비명이 들려왔다. 땅바닥에 뒹군 학생의 교복은 흙먼지투성이였다. 가해 여학생은 위에서 누르고 무릎으로 치는 것도 부족했는지 손가락을 잡고 비틀어댔다.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피해 학생은 10여분 만에 간신히 교실 쪽으로 달아났다.
교육인적자원부 등 4개 부처와 경찰청이 공동 담화문을 내고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다짐한 바로 그날 기자가 목격한 현장이었다. 무작위로 학교를 선정해 취재에 나섰다가 너무나도 손쉽게 생생한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사진은 중앙일보 3월 5일자 1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기자는 맡은 일을 빨리, 그리고 훌륭히 해냈다는 기쁨보다 씁쓸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동안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앞장서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폭력은 겉으로만 사라졌을 뿐 실제로는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등.하굣길에 상급생에게 용돈을 빼앗겼다거나 집단 구타당했다는 일은 아무런 주목도 끌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과 함께 첨단화된 새로운 학교폭력에는 아예 무방비 상태다.
정부가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부산에서는 전직 경찰을 학교에 배치하는 '스쿨 폴리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발 빠른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번 대책을 추진할지는 미지수다. 일시적인 전시성 행사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송봉근 사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