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뇌졸중 규명·치료 "한국인에게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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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최원규 박사(左), 곽병주 교수

뇌졸중 정복에 한국이 나섰다. 현재 의학계에서 추산하는 전 세계 뇌졸중 환자는 4000여만 명. 국내에서도 암에 이어 원인별 사망률 2위를 기록한다. 뇌의 신비가 벗겨지지 않은 것처럼 뇌졸중 치료 연구 역시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혈관을 막는 혈전(피떡)을 녹이거나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약 개발이 고작이다. 이들 약은 혈관을 뚫는 기능밖에 없기 때문에 투여 시간이 생명이다. 뇌졸중 발생 후 늦어도 6시간 전에 응급조치를 받아야 뇌세포를 살릴 수 있다.

뇌가 망가지는 과정을 밝혀낸 사람이 미국 신경과학회장을 역임한 최원규(51.머크사) 박사다. 그는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과잉 분비돼 뇌세포가 손상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글루타메이트는 뇌 속에선 없어서는 안되는 물질. 뇌세포의 정보 전달 방식은 전류가 전선을 따라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 흐름을 촉발시키는 것이 글루타메이트다. 문제는 이 물질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는 상황이다. 뇌졸중처럼 포도당과 산소가 중단되면 글루타메이트가 대량으로 쏟아져 뇌세포를 파괴한다.

따라서 세계 의학계가 혈안이 돼 찾는 것이 글루타메이트의 과잉 분비를 막는 물질이다. 지금까지 15개의 대형 연구가 임상까지 진행됐지만 모두 쓴잔을 마셔야 했다. 글루타메이트를 지나치게 억제해 정신분열증 같은 신경장애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사람이 아주대병원 약리학 교실의 곽병주(47)교수다.

그는 아스피린 유도체로 장염이나 류머티즘에 쓰이는 설파살라진에 주목했다. 이 물질이 글루타메이트의 독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그러나 문제는 약물의 농도였다. 뇌세포까지 약물효과를 전달하려면 적어도 지금 먹는 용량의 1000배 이상을 복용해야 한다.

그가 합성한 신물질은 설파살라진 계열이지만 강력하면서 3중 효과를 자랑한다.

첫째 효능은 글루타메이트의 기능을 차단해 뇌세포를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는 항혈전 효과다. 기존 혈전을 녹이는 tPA 계열의 약과 달리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셋째로 항산화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세포를 퇴행시키는 활성산소 제거 능력이 현재 다국적 계열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것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뉴(Neu)2000'으로 명명된 이 물질은 과학기술부의 G7프로젝트로 선정돼 성공적으로 전(前)임상단계를 마쳤다. 효능과 안전성을 확립한 것이다.

곽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뇌졸중 발생 36시간이 지난 후에도 약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기 위해 미국에 회사를 만들었으며, 올 하반기 임상 1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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