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랠리'로 4년만에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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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LCD장비 개발쪽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적자터널을 빠져나온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사장이 활짝 웃고 있다.

반도체·LCD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이 적자 수렁에서 빠져 나왔다. 주성의 지난해 매출은 1669억원. 그전 4년치의 매출(1535 억원)보다 더 많다. 340억원의 순익도 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이 회사의 황철주 사장은 최근 몇년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999년말 코스닥에 입성한 주성엔지니어링의 주가는 한때 10만원대까지 치솟았지만 2003년 3월 1500원대로 주저 앉았다.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대기업에 대한 납품 물량이 끊기면서 적자가 쌓였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3년간의 누적 적자액은 1200억원에 달했다. 업계에선 '주성은 끝났다'라는 루머가 돌았고 일부 금융기관의 대출회수 압력은 거셌다. 황 사장은 "거래처가 끊어져도 버틸 수 있지만, '선수들'(그는 직원을 '선수'라고 부른다)이 떠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대기업 하나만을 쳐다보고 사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황 사장은 이때 승부수를 던졌다. 그동안 치중했던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LCD(액정표시장치)장비 분야로 눈을 돌렸다. 주성의 주력 생산 품목은 원래 반도체 증착장비(CVD)였다.

증착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전기적 신호를 보내는 얇은 막을 입히는 반도체 제조의 공정의 하나다. 이 공정이 반도체 수율(생산성)을 결정한다.

초정밀 제품인 증착장비는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 도쿄일렉트릭(TEL) 등 미국.일본의 몇몇 기업만이 만들고 있었다. 황 사장은 반도체 공정과 LCD 공정이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 LCD 증착 장비 개발에 나섰다. LCD 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것으로 믿었다.

연구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다보니 2002년엔 당기 순손실이 매출의 4배에 달하기도 했다. 결국 공장을 늘리는 데 쓸 요량으로 남겨뒀던 땅까지 팔아 연구비를 충당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LG필립스LCD에 납품을 하면서 지난해 매출의 60% 이상을 LCD 장비에서 올렸다.

중국.대만 등에서도 미.일 장비업체와 겨뤄 일감을 따냈다. 지난해 주성의 수출액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다.

황 사장은 한국 반도체 장비업계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5년 외국계 반도체 장비업체에 입사한 황 사장은 반도체 증착장비에 매달렸다. 이 장비가 설치된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장비운영 책임자로 있으면서 7년간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할 정도로 반도체 장비와 씨름했다.

황 사장은 "10년간 작성한 연구 자료가 트럭 한 대 분량쯤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에 대한 그의 집착은 주성의 특허 건수에 그대로 녹아있다. 국내 코스닥 기업 전체 특허의 14%가 주성의 몫이다.

직원의 절반이상이 연구개발 인력이며, 매출액의 10%를 매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선진국'을 자부하고 있지만, 이 산업의 기초가 되는 반도체 장비는 미.일에 비해 크게 뒤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주성은 세계 반도체 장비업체 30위권에 진입했다. 황 사장은 "수년내 매출 1조원을 달성, 세계 반도체 장비업체 5위권에 올라서는 게 목표다. 우리 '선수'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는 날, 나는 행복하게 회사를 떠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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