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범 후손들 "일 왕실 사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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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일찍 왔어야 했습니다. 시해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이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홍릉을 찾아 사죄의 절을 올렸다. 시해사건 110년 만의 일이다.

▶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인 가와노 다쓰미(右)와 이에이리 게이코가 10일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합장한 홍릉(경기도 남양주시)을 찾아 조상의 잘못을 대신 사죄했다. [남양주=연합]

10여 명 홍릉서 사죄의 절

10일 오전 홍릉을 찾은 이는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을미사변)한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84)와 이에이리 가키쓰(家入嘉吉)의 손자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77) 등 시해범 후손과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회원인 일본인 10명. 시해범의 두 후손은 봉분을 향해 세 차례 큰절을 올리고, 일본에서 제(祭)를 올릴 때 쓰는 말차(抹茶)를 올렸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인 정수웅(다큐서울 대표)씨 초청으로 9일 입국했다.

가와노는 "가족에게만 알리고 왔는데 일본으로 돌아가면 많은 이들에게 여기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릴 적 향주머니와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놀았는데 그게 명성황후의 것이란 걸 어머니에게서 들었다"며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일본에서 챙겨온 모조품을 내일 경복궁에 가서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마침 영친왕(고종의 여섯째 아들)의 기일을 맞아 홍릉 인근 영원에 제를 올리러 들른 명성황후 증손자 이충길(67.미국 거주)씨와 우연히 만났다. 가와노와 이에이리에게서 사죄의 말을 들은 이씨는 "사과를 받고 안 받고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며 "정부 차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와노는 "일본 황실이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을 초청한 정수웅 대표는 "시해범들은 알려진 바와 달리 엘리트였다"며 "시해범 48명 가운데 일본인이 한국에 세운 한성신보사 직원 20명이 포함된 사실을 이번에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시해범 후손들은 11일 오전 경복궁을 방문한 뒤 12일 출국한다.

남양주=배영대 기자

▶ 권오창 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영정.

◆ 을미사변=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불태운 사건이다. 황후의 친러 정책을 막으려는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로 이뤄졌다.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을미사변 넉달 뒤(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다(아관파천).

*** 바로잡습니다

5월 11일자 11면에 실린 '명성황후 시해범 후손들 사죄'기사 중 '영친왕은 의친왕의 아홉째 아들'을 '고종의 여섯째 아들'로 고칩니다. 또 미국에 거주하는 왕손 이충길씨는 명성황후의 증손자가 아니라 고종의 후실이었던 귀인 장씨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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