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심술기 어린 두 아이의 세상 마주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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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빈터의 서커스
찰스 키핑 글·그림, 서애경 옮김,
사계절, 32쪽, 9000원

하인리히 호프만 박사의 더벅머리 아이
하인리히 호프만 글·그림, 심동미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30쪽, 6800원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인 '빈터의 서커스'에서 귀엽고 친근한 외모의 주인공이나 밝고 화려한 배경 공간을 기대한다면 조금 어리둥절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인 스콧과 웨인은 장난기를 넘어서 심술기가 뚝뚝 떨어지는 외모이기 때문이다. 둘이 공을 차며 노는 놀이터는 "시내 한복판에 들어차 있던 낡은 주택이며 공장이며 창고들이 헐린 자리에" 저절로 생겨난 빈터다. 때문에 빈터의 풍경 역시 황량하기 그지 없다. 갈색 톤으로 잔뜩 움츠러든 공장들에서는 금방이라도 시커먼 매연이 쿨럭쿨럭 솟아나올 것 같고, 하늘은 보나마나 잿빛처럼 여겨지도록 그려놓았다. 그림책의 내용 또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유쾌한 그림책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날 빈터에 서커스단이 들어온다. 둘은 집에서 돈을 받아와 서커스단으로 향한다.

그러나 서둘러 서커스단 천막 안으로 들어간 두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괴상한 인상의 단원들이다. 말도 낯설어 보이고 사자 두 마리는 자고 있다. 알고보니 너무 빨리 서커스단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단원들의 곡예와 묘기는 존경스러울 정도였고 사자들은 쩌렁한 울음소리를 내며 불길을 뚫는다. 하지만 그뿐, 공연이 끝나자 서커스단은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나버리고 빈터는 다시 텅 비게 된다.

어두운 그림과 생경한 내용의 그림책이 선사하는 감흥은 역시 색다르다. 기대와 예상이 깨지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근거없는 무지개빛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책은 정직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이 기괴하겠지만.

1844년 프랑크푸르트의 젊은 의사였던 지은이가 세 살짜리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려준 그림책 '더벅머리 아이'도 일반적인 '그림책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책에 실린 열 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른의 가르침이나 생활 예절 등을 지키지 않아 낭패를 당하거나 위험을 자초한 경우다. 손가락 빠는 콘라트는 두 엄지 손가락을 모두 잃고, 폭풍치는 날 길을 나선 로베르트는 우산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아이들에게 '말 안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끔찍한 경고로도 받아들여질 듯 싶다. 그러나 이 책의 그림은 따뜻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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