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의 과학 읽기] 문화에 따라 달라진 시간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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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조금 낯설지 모른다. 그보다는 "지금 몇시인가?"나 "언제 공사가 완공되는가?" 따위의 물음이 훨씬 쉽게 다가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시간은 대개 계량의 대상이다. 근대사회는 시간뿐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수학화하는 토대 위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밀한 계시(計時)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영국이 대항해 시대를 위해 해상에서의 정확한 시간 측정이 가능한 장치를 현상모집한 것이 1714년이었다. 그후 시간을 측정하는 단위는 날로 정교화해졌고, 지구의 자전에서 나타나는 작은 불규칙성도 점차 용인되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라디오에서 울리는 시보는 더 이상 자연에 대한 대응물을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 1초는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하루를 8만6400으로 나눈 길이가 아니라 세슘 원자의 91억9263만1720회의 충돌을 뜻한다. 고도 기술사회에서 시간은 인간의 발명품 목록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클라우스 마인처의 '시간이란 무엇인가'(두행숙 옮김, 들녘)는 아득한 고대에서 현재까지 시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개괄서이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인공물(artifact)의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류가 언제 처음 시간을 의식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농경을 통해 자연의 거대한 리듬이 인간사회에 편입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문명에서 이루어졌던 천체 관측도 반복과 주기를 시간의 중요한 특징으로 인식했다. 근대 이전의 시간은 대체로 순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금이 이 주기의 어디 쯤인가이지 몇 년 몇 월인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시간의 화살, 즉 방향성이 주어진 것은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된 기독교적 세계관, 그리고 뉴턴의 절대 시간이라는 개념이 한데 결합한 이후의 일이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은 이러한 시간관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관찰자가 속한 관성계에 따라서 저마다 고유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대론적 시간관은 여전히 시간을 대칭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이론에 속한다. 이후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논의는 무척 복잡해진다. 때문에 시간에 대한 가장 최근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우주론, 물리학, 수학 등의 첨단 이론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로 그런 논의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자연에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시간 주기와 리듬이 있으며 그것들이 한데 얽혀서 자연의 거대한 생태학적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리듬에 대한 이해는 정밀한 계량으로는 얻을 수 없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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