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겉도는 현금영수증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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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000원짜리 음식을 팔면서 세금까지 다 내면 어느 식당이 살아남겠나."

며칠 전 서울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계산을 한 뒤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자 주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몇 만원어치는 먹어야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현금영수증 제도가 겉돌고 있는 좋은 사례다. 세금의 사각지대인 현금거래를 양성화해 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 간 세부담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이 제도를 시행한 지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자영업자나 소비자 모두 이 제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는 세원이 노출되는 이유로, 소비자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현금영수증을 외면한다. 지난 2월 말 현재 현금영수증 가맹점 수는 91만 개, 하루 평균 발급건수는 76만 건이다. 한 가맹점이 하루 평균 고작 0.8건을 발급한 셈이다.

이처럼 현금영수증 발급이 부진한 이유로는 홍보와 유인책 부족이 꼽힌다. 국세청 현금영수증상담센터의 상담인력은 고작 60명이다. 상담원 한 명이 하루에 받는 문의전화는 1000건이 넘는다. 600여 명의 상담 인력이 1인당 하루 평균 100건의 전화를 받는 은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현금영수증을 이용하면 소비자들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맹점도 발행금액의 1%에 해당하는 세액(부가가치세) 공제를 받는다. 문제는 신용카드를 이용해도 이런 '혜택'을 똑같이 준다는 점이다. 한 식당 주인은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신용카드로 결제받으면 되지 누가 굳이 현금영수증을 떼어주겠나"라고 반문했다. 더욱이 현금영수증은 신용카드와 달리 가맹점 등록을 해놓고 발급을 거부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국세청은 요즘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업소에 대해 '세무관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한 홍보를 한층 강화하고 세금 혜택 등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당근'을 더 많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김창규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