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빅4' 과연 달라졌나] 국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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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권력기관들은 더 이상 정권에 봉사하지도 정권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과거에 '권력기관'으로 군림했던 조직이 '원칙 기관'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 4개 기관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으며 아직도 버리지 못한 구습은 무엇일까.

국정원의 가장 큰 변화는 사찰.공작의 혐의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때인 19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을 여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위협공작에 국정원이 동원됐다. 98년 12월 말에는 국정원이 정치정보 수집을 위해 사용하던 국회 본청 529호실이 발견돼 파란이 일었다. 집권 내내 야당의 도청 피해 주장이 이어졌다.

문희상(열린우리당)국회정보위원장은 "현 정부 들어 야당의 사찰.공작.도청 시비가 한 건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정보위의 한나라당 간사인 정형근 의원도 "사찰.공작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동의했다.

국정원이 정치 관련 업무를 대폭 줄인 것은 사실이다. 정치정보 수집 인력의 상당수를 경제나 사이버 관련 분야로 돌렸다. 국정원 사람들은 정보부의 정치개입이 없어진 대표적 사례로 지난해 4월 총선을 꼽는다. 원래 총선은 정보부의 '대목'인데 국정원은 조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분야를 총괄했던 Q씨는 "과거 정보부는 출마자들에 대한 지역 민심을 수집해 여당의 공천단계에서부터 관여하고 여당 선거를 지원했으며, 판세를 분석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4월 선거 때는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 판세 예측이 있기는 했으나 신문 보도나 여론조사 기관의 수치를 정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위원장은 "당시 국정원의 예측이 많이 빗나가 여권 내에서 화제가 됐다"고 기억했다.

사찰.공작의 흔적은 없으나 국정원은 여전히 정치권.부처.노조.언론 등에 대해 '정보수집 담당관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치권의 경우 정치 관련 부서 소속 직원 7~8명이 주로 여의도에 머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담당관의 활동에 대해 국정원의 고위 관계자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사찰 정보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보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회정보나 정책정보를 수집하도록 돼 있다"며 "이에 따라 안보나 사회갈등과 관련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정책 관련 정보를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찰은 없어졌지만 관찰은 여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야당은 국정원이 변신하면서 안보 관련 정보 수집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정형근 의원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주요 대북정보를 국정원으로부터 공급받는다"며 "북한의 6자회담 거부 선언이 있기 전에 정 장관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정보 부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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