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복잡한 과학 지식 쉽게 풀어 쓰는 것도 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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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에는 산고가 따른다. 하지만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가 난무하는 이론을 제대로 표현하는데도 만만찮은 어려움이 따른다. 과학자나 이공계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과물을 논문이나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는 능력이 과학적 재능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더욱이 비전문가나 일반 대중을 상대하려면 훨씬 쉬운 말을 써야 한다.

 ‘과학자의 글쓰기’가 국내외 과학기술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대학이 이공계 글쓰기 과정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하는가 하면 작문 교수를 영입하기도 한다. 이공계 글쓰기 강좌가 있는 곳은 서울대를 비롯해 KAIST·성균관대·전남대·고려대·국민대 등이다. 정부도 글쓰기 강좌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울대는 이공계 논문 작성 기법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KAIST·성균관대는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큰 비중을 둔다. KAIST의 경우 교과목 외에 글쓰기 상담과 개인지도도 한다. 고려대는 과학과 사회를 연결 짓는 시사성 주제를 주고 글을 쓰도록 한다. 전남대는 ‘논술 중심 전공 교과’를 운영한다. 전공 과목을 공부하면서 글쓰기를 함께 배운다.

 미국 MIT대학은 글쓰기 네 과목을 필수로 지정했다.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글로 풀어내는 것뿐 아니라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대중적 글쓰기까지 배운다. “이공대생이라 작문은 좀…”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공계 출신은 과학과 수학 재능만 뛰어나면 된다는 인식이 오랜 기간 지속됐다. 하지만 결국 사회와 대중에 다가가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과학계 내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덕환(과학 커뮤니케이션 주임) 서강대 교수는 “과학의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는 시대다. 글로 자신의 성과를 제대로 알리고, 다른 분야 과학자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창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지동설의 주인공으로 그보다 늦게 태어난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많이 떠올린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학설을 난해한 라틴어와 논문투로 발표했고,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어 일상어의 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 ‘과학자의 글쓰기’가 후대의 명성을 가른 사례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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