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 자녀들의 탈선은 부모 수준을 보여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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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22면

“사회책임 의식은 모르는 새에 내게 스며들었다.”
스티븐 록펠러 2세(스티븐)의 말이다. 그는 석유제국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존 D 록펠러 1세의 5대 손이다. 골프 매니어인 그가 친환경 코스를 건설 중인 클럽 모우와 제휴하기 위해 지난주 서울을 찾았다. 중앙SUNDAY는 ‘록펠러 가문의 왕성한 사회공헌 활동이 어디서 비롯됐을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그와 마주했다. 스티븐은 세계 미소금융(Micro Credit)의 상징인 방글라데시 그라민재단의 이사다. 록펠러재단의 기금규모는 30억달러를 넘는다.

‘록펠러 가문 5대손’ 스티븐 록펠러 2세

-언제부터 사회공헌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10대 시절엔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공헌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결혼한 직후인 22살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모든 부자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지는 않는다.
“나는 부모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선사업에 노출돼 있었다. 아버지(스티븐 록펠러 1세)와 어머니는 여러 가난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풍토병 등으로)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사회공헌 활동이 내 인생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선사업에 젖어들었다.”

-다른 계기는 없었나.
“20대 중반 내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존 D 록펠러 이후 가문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내 조상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 베푼 게 아니라 훌륭한 생각을 지녔기
때문에 사회공헌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록펠러 가문의 뿌리에 대한 강한 긍정이었다. 순간 존 D 록펠러의 또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에너지부문의 독점 기업인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을 매수했고 폭력을 동원해 경쟁 기업을 흡수했다.

-존 D 록펠러는 불법 행위도 하지 않았는가.
“(망설임 없이) 우리 가문은 아주 다양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갖고 있다. 존 D 록펠러도 여러 가지 모습을 지녔다. 그의 전기를 쓴 한 작가가 책의 끝머리에 ‘존 D 록펠러는 아주 복잡한 인물이다’라고 쓸 정도다. 그의 후손들은 사회공헌에 더 헌신했다. 가문이 진화한 것이다.”

-후손으로서 존 D 록펠러를 어떻게 평가하나 .
“그에 대한 논문을 썼다. 나 자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정리한 것이다. 그는 정치인을 매수하기도 했다. 그의 독점에 대한 비판도 많다. 반면 그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여 소비자들에게 싼 기름을 제공했다. 현대 경영의 원리를 개척하기도 했다.”

-록펠러 가문 때문에 미국 탐사보도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더 타벨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스탠더드오일을 해부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분명히 얘기하겠다. 그 시절(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그는 용감한 여성이었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런 역사가 현재 삶에 영향을 어느 정도나 미치고 있는가.
“그들 덕분에 현재 내가 있다. 조상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분석하면서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선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회 변화에 맞춰) 나만의 기여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망설이거나 앞뒤를 재는 듯한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보약인 듯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갈등은 서서히 사라지고 상대를 인정하는 여유가 자리 잡은 듯했다. 화제를 바꿔 미소금융을 물었다. 그는 그라민재단에 참여하기에 앞서 세계적 금융그룹인 도이체방크의 이사였다.

-그라민재단의 성공 원인은 무엇인가.
“가난한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빌린 돈으로 길거리에서 노점을 열어 열심히 일한다. 그들은 억척스럽게 일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미소금융이 성공하려면 자립의지가 강한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줘야 한다.”

-채무불이행 비율이 높지 않는가.
“(순간 목소리를 키우며)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신용도는 세계 최고다. 채권 회수율이 99% 이상이다. 다만 초기에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좀 일어난다.”

-초기 연체율이 높다는 말인가.
“(책상을 치면서)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다. 나 같은 사람들이 돈을 기부해 그 손실을 메워줘야 한다. 이는 낭비가 아니다. 초기 투자나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면 실적을 내 미소금융이 지속 가능해진다.”

미소금융을 이야기할 때 그는 웅변가처럼 돌변했다. 표정과 제스처는 더욱 활기찼고 목소리는 우렁우렁했다. 말을 막지 않으면 한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태세였다. 서둘러 이야기를 바꿨다.

-요즘 중국·인도의 신흥 부호들의 호화 생활이 화제다.
“부를 일군 초기에 늘 있는 일이다. 열심히 일해 부를 축적하면 초고급 차와 호화 주택을 사고 싶어한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 외에도 행복감을 느낄 일은 많다.”

-어떤 일이 있을까.
“거창하게 말하지는 않겠다. 생활을 즐기면서도 가까운 이웃과 지역 공동체에 되돌려주는 일을 하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사회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대기업 오너 아들이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
“부모가 문제다. 부모가 좋은 본보기를 보이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나는 그것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리더십’이란 말이 낯설다.
“리더십은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부모도 자녀들을 이끈다. 부모는 자녀를 일정한 틀에 넣기 위해 훈계하기보다는 말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부모가 진정성을 보이면 자녀들은 따른다.”

-록펠러 가문은 자녀들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오래전엔 금전출납부를 쓰게 하는 등 강제적인 교육에 의존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교육을 강조한다.”

-(탈선 방지를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 같은 것은 있는가.
“자원봉사를 포함한 일정한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재단은 가문의 후세들이 그 프로그램을 다 마쳤는지 평가한다 (인센티브를 주는지는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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