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남북한 하나된 IT 강국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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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반드시, 그러나 갑작스럽게 온다는 통일이 독일에 찾아온 것은 20년 전 10월이었다. 물론 19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로 상호 공존의 틀을 마련했고, 1989년의 베를린 장벽 철폐, 그리고 마침내 1990년의 통일조약 체결 등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한 정상회담을 했고, 정보기술(IT) 강국답게 남북 IT 교류에 대한 총체적 합의도 있었다. 많은 IT 벤처기업들과 대기업이 북한과 소프트웨어·통신 분야 교류를 시작하고, 대학 간 IT 협력도 본격화했다. 통신·전자 업계는 2002년 남북 통신회담을 통해 이동통신 사업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 준비 노력을 떠올리면 우리 모습은 부족하고 허전하다.

10월 9일 한글날만 되면 대한민국 고유 언어의 우수성을 세계에 자랑하지만 한글을 컴퓨터로 표현하는 키보드(자판) 배열은 남북한이 다르다. 오랜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 언어 습관의 괴리는 PC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북한이 중국과 합영회사를 세워 컴퓨터를 조립·판매하고 있지만 생산량이 워낙 적어 사용하는 대부분의 자판은 외국산이다. 이럴 경우 한글이 표시돼 있지 않아 북한 사람들은 ‘건반’이라고 불리는 자판을 일일이 외워 치는 형편이다. 통일이 되면 한글을 컴퓨터로 입력하는 데 두 가지 자판을 준비하거나, 중국이 만들겠다는 한글 통일 자판을 남북한이 쫓아가야 할 판이다. 방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TV 전송 방식이 달라 휴전선 인접 지역에서도 북한 TV로는 남한 방송을 볼 수 없다.

통신만 보더라도 독일 통일 전 동독의 사정이 좋았던 건 아니다. ‘신생아가 태어날 무렵 집전화를 신청하면 커서 혼인할 무렵에 개통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통신 기반이 낙후돼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동·서독 통신협정 체결 이후 지속적으로 통신망 확충 노력을 기울였다. 통일되기 1년 전에 이미 통신망 현대화를 위한 종합계획인 ‘텔레콤 2000’을 수립해 통독 이후 통신 분야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서독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해 통신 문제 해결을 꾸준히 추진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협정 체결과 민간 교류 같은 외형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과 남한 본사 간의 통화가 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특히 통신 인프라는 독일 통합 과정에서 교통·의료·교육·상수도 등 여타 사회간접자본보다 개선 요구가 큰 분야로 조사됐다. 국가적으로도 동질성 회복과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필수적·직접적 수단이다. 통일비용 절감에 핵심 인프라인 셈이다.

통일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신수요 증가에 대처하려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독일 통일은 가르쳐 준다. 통신망 설치를 위해 부동산 소유권 문제가 해결돼야만 하고 기술인력 양성이나 설비·자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막힌 남북 교류 협력의 물꼬를 빠르게 트려고 인프라 투자보다는 시장에서 당장 팔리는 서비스와 제품, 또 그것을 만드는 거점인 개성공단과 같은 유형의 모델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 나름대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더 시급한 것은 북한의 통신·방송 등 IT 인프라를 어떻게 빨리 갖춰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하나된 IT강국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종합계획이다.

눈에 보이는 교류협력 확대도 중요하지만 기술·표현방식 등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통일시켜 감으로써 북한의 소통 인프라 기반을 닦는, 길게 보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통일비용은 예측하기 힘들 정도 불어날 수 있다. 이런 사전 대비책을 꾸준히 강구해야 통일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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