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강 지음
황소자리
272쪽, 1만3500원
행복한 사람은 ‘지금, 여기’를 떠나지 않는다. 현실의 불운과 불행에 의문을 품고 답을 구하는 사람만이 길을 나선다. 여행기를 읽는다는 건 여행지의 풍광만이 아니라 그 고단한 마음길을 따라가는 일이다. 이역만리 유럽으로 ‘수도원 기행(2001년)’에 나섰던 소설가 공지영이 그랬다. 수백·수천년을 내려온 수도원들의 위대한 침묵은 그의 고해를 받아주는 하나의 배경이었다. 평탄치 않은 개인사를 끌어안고 마침내 “주님, 항복합니다”를 외치는 ‘회심(回心)’을 지켜보며 맘이 ‘짠했다’. 그리로부터 10년 뒤 그의 정신적 여동생쯤 될 법한 작가가 길을 떠났다. 지난해 산티아고 여행기 『그 길 끝을 기억해』를 내놨던 조은강(43)이다. 이번엔 우리땅 곳곳에 있는 유서 깊은 성당들이 목적지다. ‘산티아고’라는 지명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의 삶 역시 물음표로 가득하다. 회삿일로 동료와 송사를 겪었고, 나이 마흔에 아직 반려를 만나지 못했다. 하나 오직 그것만이 길 떠남의 계기는 아니었으리라.
조은강
마산교구 남해성당의 내부. 삼각지붕이 특이하다. 삼위일체의 영성을 상징한다. [황소자리 제공]
처음엔 단순히 여행자요 구경꾼이었다. 굳이 미사 시간을 피해 성당에 들어섰고, 사진을 찍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떠나오기 바빴다. 산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데 굽이 뾰족한 부츠를 신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데면데면했던 엄마와 성당 순례를 다니게 됐다. 아무리 쪼들려도 내키지 않은 일은 거절할 용기도 생겼다. 지금의 나, 여기에서의 행복이 무엇보다 소중하단 사실을 이제 막 발견한 보물처럼 어루만졌다. 산티아고가 아니면 저 남녘의 성당이라도 가야 느낄 수 있었던 평화가 왔다. 동네 성당에서 ‘파랑새의 행복’을 찾아낸 그는 여행을 마칠 때가 됐음을 알았다. 그의 말마따나 성당 기행은 성장 기행이었던 것이다.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