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특수교육계의 대부' 김효진 경운학교장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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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김효진 교장이 경운학교 유치부 졸업생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김 교장은 이달 말 명예퇴직한다. 임병철 인턴 기자(한서대 3년)

"내 제자들은 혼자서도 라면을 끓일 줄 안답니다."

18일 졸업식이 치러진 서울 종로구의 경운학교. 이 학교 김효진(59) 교장은 제자들의 졸업과 함께 38년 간 몸담아온 교육계를 은퇴하면서 이런 자랑을 했다. 그의 제자들은 모두 중증 정신지체장애아들이다. 김 교장의 가장 큰 보람은 그들이 혼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는 것이다.

"장애아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혼자서는 밥도 못먹는 아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들 수가 없겠죠."

하지만 김 교장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자립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김 교장이 경운학교의 교육목표로 삼은 것은 '전교생 라면 끓여먹기'. "함부로 가스불을 켜게 하면 어떡하느냐"는 등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이제는 받아만 먹던 아이들이 직접 끓여 먹을 수 있게 됐다.

'대중 목욕탕 이용하기' '대중 교통을 이용해 수학여행 다녀 오기' '직접 돈 계산하며 외식 하기'…. 경운학교의 교육은 이렇게 학생들이 실제 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80년부터 장애아 교육에 헌신해 온 김 교장은 '특수교육계의 대부'로 불린다. 서울 시내에 공립 특수학교 여섯 곳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장애아 교육에 공헌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67년 충청남도 태안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가 장애아 교육에 투신한 것은 청각장애인인 둘째 아들 진규(34)씨 때문. 아들을 보낼 농아학교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열악했던 특수교육의 현실에 눈을 떴다고 한다.

김 교장은 서울시교육청 장학관 시절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며 몰려든 주민들 앞에 나가 "장애는 여러분 아이에게도 생길 수 있다"며 눈물로 호소해 설득한 적도 있다.

김 교장은 "매년 비장애인 못지 않은 능력을 지닌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사회의 편견 때문에 직업을 잡지 못한다"면서 "그때마다 죄인이 된 것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눈길 한 번 안 주던 자폐아가 스스로 다가와 팔짱을 끼거나, 청각장애자인 제자가 대학을 수석 졸업해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모습 등을 보며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권유에도 한사코 퇴임식을 사양한 김 교장은 "이제 자립 능력이 없는 중증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이 내 인생의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글=천인성 기자<guchi@joongang.co.kr>
사진=임병철 인턴 기자(한서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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