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네팔 천민층 아이들에게 꿈 심어주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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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류시야(57) 전 주(駐) 네팔 대사는 2000년 부임 직후 수도 카트만두 인근의 마타티르타 지역을 찾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네팔의 신분제도 상 '불가촉 천민'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모여사는 그곳에선 아이들이 가축 우리에서 먹고 자며 밤낮없이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 네팔 마타티르타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한 류시야 전 대사.

"짐승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처지였어요. 이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도 시켜야 나중에 좀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나 싶더군요."

네팔 정부에 먼저 호소해봤으나 여력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류 전 대사는 직접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사재를 털고 주변 친지를 설득해 3만3000달러를 모았고, 국제기아대책기구.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도 받아 2003년 초 '마타티르타 비전 스쿨'을 착공했다. 네팔에서 외국인이 천민 학교를 세우긴 처음이었다. 지난해 3월 드디어 학교 건물이 완공돼 남녀 어린이 400명을 대상으로 초등 교과과정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쳤다. 류 전 대사가 2003년 6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지인 30여명으로 학교 후원회를 구성했지만 매달 3000달러 이상 들어가는 학교 운영비를 대기엔 벅찬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뜻있는 국내 독지가를 찾아 후원회를 70~80명 수준으로 키우는 게 당면 과제입니다. 그래야 중등.고등부에도 아이들을 받을 수 있을텐데…."

현재 교장이 머잖아 연수를 떠날 예정이라 새 교장을 구하는 일도 급하다. 류 전 대사는 "한국인의 봉사 정신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고 했다.

"과거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직후 선진국들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지요. 이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도 된 만큼 받은 것을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나요?"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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