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통계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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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통계는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시의성도 떨어져 이를 토대로 정책을 만들기가 어렵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정례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통계 부실이 국가정책의 입안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정한 것이다.

통계 부실은 당장 현실문제로 나타났다. 정부는 연초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한 40만개 일자리 창출'을 올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막상 정책을 만들려다 보니 통계의 벽에 부닥쳤다. 가장 기본적인 자영업소의 숫자조차 파악이 안돼 있기 때문이었다. 서비스업의 업종별 업소 숫자나 고용인원에 대한 통계가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러니 어떤 업종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감을 잡기조차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관련 자료를 토대로 간접 통계를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경우 총무성 통계국은 본조사와 중간조사를 합쳐 2년6개월에 한번씩 민간사업소.자영업자 등에 대한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예컨대 2001년 기준으로 일본의 자영업 업소 수는 313만2119곳이고 종업원 수는 총 900만7009명이다. 업소와 종업원 숫자는 다시 600여개 업종으로 소분류돼 있다.

◆ 실태=서비스업뿐이 아니다. 지난해 6월 현재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통계는 총 464종이다. 일본은 사회복지분야의 통계만 750여종을 생산한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엔 아직 고령자 취업이나 간병 실태에 대한 통계마저 없다. 수시로 청년실업을 걱정하면서 대졸자의 취업 상황에 대한 공식 통계도 최근에야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 도서관의 장서가 몇 권이나 되고 좌석은 몇 석이나 되는지조차 통계가 없다. 농촌의 인구가 급속하게 줄고 있으나 농촌 빈집에 대한 조사는 아예 안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재형 박사는 "이런 통계는 국민의 경제생활을 파악하고 주요 정책을 입안하는 데 반드시 필요해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전국 단위 통계는 낫다. 지역통계는 인력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인식 부족으로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쓸모가 없는 게 허다하다.

조사방법에 따라 통계 수치가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다. 2002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도소매업 종사자는 399만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통계청이 총 사업체 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도소매업 종사자는 261만명이었다. 무려 138만명이나 차이가 났다.

◆ 왜 그런가=통계가 이처럼 부실해진 것은 한 마디로 그동안 통계를 소홀하게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통계청장의 정부 직급은 아직도 1급이다. 차관급 이상이 나오는 정부부처 통계 관련 회의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인력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2003년 인구 100만명당 전체 통계인력은 한국이 112명이었다. 그러나 캐나다는 95년에 이미 234명이었고, 독일과 일본은 96년 각각 212명과 195명으로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통계를 기획.분석할 능력이 있는 고급인력은 차이가 더 난다.

KDI 김중수 원장은 "통계는 산업의 고속도로.철도처럼 정책의 인프라에 해당하기 때문에 통계 실력은 곧 한 나라의 경쟁력이 된다"며 "인프라를 확충하는 개념으로 국가 통계 전반에 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윤.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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