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등 총동원 국가 만들기…근대 일본에 개인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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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1884년 당시 일본 군악대. 메이지 시대 일본 국민들의 애창곡은 군가·국가·문부성창가 등이었다.

"메이지 유신(1868년) 성공으로 중앙집권체제를 갖춘 일본은 음악을 국가 선전과 사상 통일, 전쟁 수행 도구로 이용했다. 일본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수입한 최초의 서양 음악은 군악(軍樂)이었다."(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천황 제도 성립 당시에는 일본인 대다수가 천황이 무엇인지 몰랐다. 교육칙어를 정점으로 한 교육 제도 등을 통해 이제 천황과 국가, 국체의 신성화는 일본인에게 운명적 환경으로 변해갔다."(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

메이지유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까지 철학.음악.미술.문학 등 일본의 지식사회 전반이 '국민국가와 일본인 만들기'에 총동원된 과정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제는 "'일본'의 발명과 근대". 인문학의 전통적 가치인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배제된 채 국본주의(國本主義) 중심으로 전개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비판하는 자리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와 'BK21 학제적 일본연구팀'(팀장 윤상인)이 공동 개최하는 이 행사는 1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한양대 HIT건물 6층에서 열린다.

미술에서는 오카쿠라 덴신(1862~1913) 도쿄미술학교 교장이 주도해 '일본 미술'이란 개념도 없던 시대에 '일본미술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국가의 요구에 부응했다. "미술이란 말은 서양미술사가 소개되면서 1872년 처음 등장했다. 오카쿠라 덴신이 1889년 고미술잡지 '국화'(國華)에 쓴 창간사의 첫 문장이 '미술은 나라의 정화'라고 시작한다."(김용철 성신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허우성 교수는 일본 교토학파의 태두로 추앙받는 니시다 기타로(1870~1945)의 국가지상주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말한 '전국 인민들의 뇌리 속에 국가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는 것이 메이지시대 지식인들의 소명이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또 "니시다는 1950~60년대 전후책임론을 묻는 과정에 일본 지식사회에서 비판받은 바 있으나 90년대 들어 우경화 분위기 속에 '다시 니시다를 배우자'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주의가 왜 문제인가. 윤상인(한양대 일문과 교수) 팀장은 "자기 민족.국가를 모든 생각과 행동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개인은 물론 주변 국가에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 팽창 이론으로 확대 재생산된 일본의 경우는 한 사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겨냥한 화살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로 되돌아온다. 19세기 말 '서양 베끼기'로 출발한 일본의 근대화는 '일본을 통한 서양 배우기'로 한국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소장은 "19세기 초반 생겨난 서양 근대국가 시스템의 명암은 한국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서양→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근대국가 만들기 과정은 '민족 정체성 창출'이라는 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국적 특수성'만 강조하기 보다는 세계사의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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