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의 힘? 배정 예정 학교도 바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4일 오후 2시 서울 개포동 개일초등학교.

'병아리 입학생'들을 위한 예비 소집이 열렸다. 동네별로 줄을 나눠 선 코흘리개들이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타워팰리스에 사는 학생들이 서 있어야 할 '기타 지역'은 텅 비어 있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는 42~66층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 한국 부유층의 상징이다. 53평형이 시가로 14억~15억원 정도로 평당 3000만원대에 거래된다.

해당 학생들 대부분이 개일초등학교 대신 인근의 대도초등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날 개일초교를 찾은 102명의 입학생 중 타워팰리스에 사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당초 교육청의 계획대로라면 이날 개일초교 입학식에 '부잣집 아이들'이 10명 넘게 줄을 서야 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강남교육청이 올해부터 타워팰리스에 사는 취학아동을 대도초교에서 개일초교로 입학하도록 하는 학구(學區) 조정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지역 아파트 재건축이 완료되면서 올 2월 J아파트 800여가구가 들어오는 등 내년까지 모두 5000여가구가 도곡동으로 유입되면 학생들이 넘쳐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대도초교의 학급당 인원은 현재 32명에서 내년에는 40명을 넘는다는 것. 반면 개일초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25명이다.

그러나 배정 학교가 대도초교에서 개일초교로 바뀌게 된 학부모 7~8명이 지난해 말 교육청으로 몰려와 "갑작스러운 학구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 이들은 타워팰리스 주민 100여명의 서명을 받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개일초교가 대도초교보다 거주지인 타워팰리스에서 더 멀기 때문에 아이들의 통학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취재 기자가 확인한 결과 타워팰리스 중앙에서 개일초교까지의 거리는 580m로 대도초교(740m)보다 160m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타워팰리스에서 대도초교로 가려면 지하차도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통학시간도 5분 정도 더 걸렸다.

개일초교 취학 아동을 둔 박모(35.여)씨는 "거리가 더 가깝다는 건 핑계다. 우리 같은 서민의 자식들과 어울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겠느냐. 몹시 불쾌하다"고 말했다. 대도초교에는 타워팰리스뿐만 아니라 동부센트레빌, 삼성 래미안 등 고급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반면 개일초교에는 단독 주택이나 개포 주공 1단지 등 비교적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많다. 개포 주공 1단지는 시가로 7억~8억원을 넘는 아파트이지만 실제 거주자는 대부분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청은 일단 올해까지는 타워팰리스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올해엔 타워팰리스에 사는 학생들을 '공동 학군'으로 배정,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재건축 아파트에 본격적으로 입주할 시기가 1년 정도 남아 있어 학부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2006학년도에는 원칙대로 추진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