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결투’서 KO패 … 오자와 카리스마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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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리 자리를 놓고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띄웠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간사장이 끝내 무릎을 꿇었다. 14일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표 경선 투표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압승을 거뒀다. 간 총리에게 우호적이었던 당원·서포터와 지방의회 의원들은 물론 국회의원 표에서도 간 총리가 오자와를 눌렀다. 간 총리는 유효 총 득표(1212포인트)의 과반인 721포인트를 얻었다. 오자와는 491포인트를 얻은 데 그쳤다.

◆흔들리는 ‘불사조 신화’=간 총리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오자와는 눈을 꾹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자와의 눈은 간 총리가 단상에 올라가 소감을 발표할 때도 감겨 있었다. 그는 “간씨와 함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오자와씨”라는 사회자의 소개가 나와서야 눈을 떴다. 그러고는 단상에 올라가 간 총리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오자와는 “나를 지지해준 분들께 감사한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백의종군하면서 민주당 정권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경선 결과에 승복했다.

14일 오후 도쿄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 경선 도중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왼쪽)이 소신 표명 연설에 앞서 간 나오토 총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대표 경선은 민주당 내 반(反)오자와파와 친오자와파의 싸움이었다. ‘오자와=돈정치’로 몰아세우며 당정에서 오자와파 인사를 배제한 간 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40년 정치인생을 걸고 출마한 오자와는 “무너져가는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호소했다. 경선 최후 연설에선 “나는 정치생명은 물론이요, 내 목숨을 거는 결의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경선 출마는 일찌감치 그의 마지막 총리 도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치생명을 건 오자와의 도전이 패배로 끝나면서 그의 당내 정치력은 큰 손상을 입게 됐다. 당초 오자와가 우세했던 국회의원 지지에서도 간 총리에게 뒤진 것은 그의 카리스마가 닳아 없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탈당 → 야당의 길 걷나=경선이 간 총리의 압승으로 끝났는데도 일본 정치권의 눈길은 오자와의 거취에 모아지고 있다. 오자와는 40년 정치 베테랑으로, 일본 정계 최고의 실력자다. 정치자금 문제로 도쿄지검 특수부와 끈질긴 전쟁을 벌이면서도 지난해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총리보다 더 높은 상왕’으로 군림했다. 이번 경선에서도 그를 따르는 ‘꼬붕(부하)’ 국회의원들은 당내 의원의 절반에 달했다. 이들을 이끌고 오자와가 탈당할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오자와는 경선 출마 표명 때부터 일관되게 “당을 떠나는 일은 없다” 며 경선 후 탈당 가능성을 부정해왔다. 그럼에도 탈당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자민당 탈당으로 시작해 신당을 만들었다 쪼개고 다시 창당하는 오자와의 그간 ‘정치 전과’ 때문이다. 그의 탈당을 우려해 간 총리가 오자와의 추종 세력들에게 중책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당내 반발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현재로선 다음 달로 예정된 도쿄 검찰심사회의 오자와 강제기소 여부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자와가 강제기소를 당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만 강제기소를 면해 ‘결백’이 입증될 경우 정치적 힘을 받게 된다. 당에 잔류한다면 내년 3월 예산 통과 정국에서 간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 맞춰 권토중래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민주당 대표 경선 투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당원·서포터 등 34만5000여 명이 참여한다. 총점 1222점의 과반을 득점한 사람이 당선된다. 배점 방식은 국회의원 1명당 2점씩 822점, 지방의원 2382명의 표는 100점으로 계산된다. 당원과 서포터 약 34만 명에게는 중의원 300개 소선거구별로 1점씩 300점이 주어진다. 지방의원과 당원·서포터의 표는 지난 주말 우편투표 방식으로 사전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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