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통령 "나치시대 유대인 학살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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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목이 멘 듯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부인 에바 여사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2일 이스라엘 의회에서였다.

쾰러 대통령은 독일.이스라엘 수교 40주년을 맞아 이날 예루살렘을 방문, 의회에서 연설했다.

2000년 요하네스 라우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연설은 과거사에 대한 참회로 시작됐다. 그는 "연설을 할 수 있도록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과 오늘 이 시간이 저를 매우 감동시킵니다"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30분간의 연설은 독일어로 했다. 그러나 인사말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로 했다. "나치의 언어인 독일어로 연설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일부 이스라엘 의원을 다독거리려는 배려였다.

그는 나치 시대 독일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는 "독일의 과거 범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떨쳐버리려 애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쇼아(유대인에 대한 인종 학살)에 대한 책임은 독일의 일부분"이라면서 독일의 역사적인 책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의 얼굴과 생존자들에 대한 기억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세에 대한 역사 교육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독일인들을 향해 "우리의 교사.부모.언론인들이 나치의 잘못에 대해 효과적으로 설명했는지,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역사교육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촉구했다. 독일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주의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반유대주의가 독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시인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자"고 호소했다.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독일 정치인들의 진지한 역사 반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예정에 없이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어 화제가 됐다.

올해는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두 나라 정치 지도자의 모습은 너무 대조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4명을 군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매년 참배, 일제 피해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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