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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세계 속 자기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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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자연세계를 이해하려면 현대과학의 핵심원리 중 하나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에 따르면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거시적인 세계와 달리 미시세계의 작은 입자에 대해서는 전혀 불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과를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뜨릴 경우 몇 초 후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운동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미세한 원자들의 위치와 속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각 원자의 위치와 속도는 그중 어느 하나를 잘 알면 알수록 다른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측도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성은 현재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정확도에 궁극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만, 현재의 모든 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다 안다고 해도 여전히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이는 거시적인 현실세계에서도 나타나는 현대과학의 매우 중요한 일면이다.

일례로 총알을 쏘듯이 수많은 원자를 한번에 하나씩 방 안으로 쏘아 보내는 실험을 생각해보자. 이 방의 입구에는 원자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매우 좁은 문 두 개가 서로 근접해 있고, 각 원자는 이 둘 중에 어느 한 문을 통과한 다음 방안의 맞은편 벽면에 충돌하여 달라붙게 된다.

만일 어느 한쪽 문만 열려 있을 경우에는 그 문을 통과한 수많은 원자가 벽면에 거의 고루 퍼져 있음을 보게 된다. 즉 각 원자들은 벽면의 임의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두 문을 다 열었을 때는 놀랍게도 원자들이 어느 특정한 위치에만 도달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많이 쌓인 부분과 전혀 쌓이지 않은 부분이 벽면에 교대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각 원자들이 모두 동일한 실험조건에서 어느 한 문을 통과했을 뿐인데, 자기가 지나가지도 않은 옆문이 열려 있고 닫혀 있음에 따라 그 원자가 벽면에 도달하는 위치가 아주 달라지는 것이다. 즉 자신과 무관하게 보이는 옆문의 상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과율을 바탕으로 한 고전역학적인 직관적 사고와는 상반되는 결과이다.

사실 이러한 원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한 창조섭리로 작용한다.

사람은 본능으로 움직이는 동물과 달리 늘 자기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자기발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자유의지를 따라 몸을 움직인다. 즉 모든 피조물 중 유일하게 자유의지를 통해 자기선택을 하고 자기발전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동일한 환경에서도 각자의 영(靈)이 다르고 그에 따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움직이는 방향도 다르다. 결국 인생은 사주팔자가 아니라 순간마다 사건마다 자기선택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또 그렇게 하면 뭔가 잘되리라 기대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원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주위 상황, 특히 나와 무관하게 보이는 내 이웃이 내 인생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눈에 좋은 대로, 내 생각에 옳은 대로만 판단하고 움직이는 '선악과'의 인생으로는 이 땅에서 계속 광야의 허무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각자의 고유한 자유의지로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너'를 향해 창조주의 사랑으로 자기선택을 하기 시작할 때, '나'를 벗어나서 '우리'가 만들어지게 되어 이 세상에서도 불확실성을 넘어선 천국의 충만함과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제원호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