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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마인드로 IT 새 지도 그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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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비게이션만 달면 산간벽지든 첩첩 오지든 어디든 갈 수 있고,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가를 구글이 알려주는 시대에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스마트폰 다음은 또 다른 스마트 기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되겠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스마트TV든 뭐든 간에 우리에게 던져질 과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스마트폰이 그러했듯 스마트TV는 우리가 지금 쓰고 상상하는 TV 그 이상의 미디어 기능을 갖는다. 문제는 스마트TV에 탑재될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이나 콘텐트 등 소프트웨어의 진화와 생산력이다.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매체를 고안하고 설계하는 창의력이 핵심이다. 이는 종전 IT의 토대와는 전혀 다른 영토를 가상하고 거기에 창의적 지표들을 만드는 일종의 새로운 ‘지도 그리기’ 능력을 요한다.

최근 우리가 목격한 몇 사례들이 이 경우 도움을 줄지 모른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지평이나 공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안목과 창의력을 지닌 이들에 의해 IT의 역사는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아바타’의 평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입체감과 사실성을 기억해 보라. 그의 다음번 영화의 배경은 해저라고 하니 상상의 아틀란티스가 그의 손에서 어떻게 재현될지 기대된다. 다들 우주공간의 공상과학(SF) 영상물을 상상할 때 어떤 이는 깊은 바다 밑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에는 문자를 그림처럼 상상하는 ‘타이포그래피’의 감각이 숨어 있다. 문자에서 그림을 보고, 기호와 기호 사이의 여백에서 공간적 깊이를 읽을 수 있는 감각은 결국 스마트 기기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듯 떠오르는 작고 앙증맞은 앱의 도상으로 이어진다. 그때 휴대전화기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집’이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진화도 스마트 기기의 따뜻함에서 왔다고 본다. 나와 타인의 실제 거리감을 스마트 기기의 따뜻함이 바꿔치기 해버린 격이다.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을 상상하는 것, 문자를 읽기보다 그림처럼 느끼게 만들어 입체감을 주는 것, 기계의 단절감과 소외감을 즉각적인 소통으로 치환하는 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사고였던 것이다.

장자의 ‘산목편’ 한 구절에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고, 아무리 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IT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이미 큰 날개도, 큰 눈도 주어졌다. 그러니 이제 이런 날개와 눈을 가지고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IT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한다. 그럼 이 능력은 어떻게 올까. ‘탈(脫)통신’의 철학이 융합인 것처럼 여기에도 융합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신입사원 면접 때 느끼는 건 대부분 젊은이들이 협소한 사고와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틀과 패턴에 길들여진 대답, 특정 인물에 의해 보편화된 담론의 무비판적 수용, 타인과 거의 구분되지 않은 ‘스펙’의 무늬들. 이런 젊은이들한테 IT의 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공학·인문학·경영학 등으로 세분화된 대학 학부 전공과 학과 간의 벽은 ‘스마트 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가로막는다. ‘여기서만 놀아라’고 주문할 것이 아니라 ‘여기를 넘어가라’는 ‘탈(脫)’의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결국 이들 젊은 내비게이터들이 들려줄 것 아닌가.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