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38. 해병대 연예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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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5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엔 군대 안 간 젊은이가 많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랬을까. 군에 가면 다들 죽는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집안 생계를 위해서였는지 병역 기피자가 꽤 많았다. 그래서 헌병들이 거리에서 수시로 불심 검문을 했다. 검문에 걸린 젊은이들을 길 한쪽에 세워놓으면 군 트럭이 돌면서 이들을 태워 바로 머리를 깎고 입대시켰다.

▶ 1961년 해병대 연예대 복무 시절.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수 박일호씨, 소대장, 중대장, 가수 도미씨, 필자.

나도 병역 기피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명동으로 흘러들었고 곧 이어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입대를 피하고 싶었다. 대신 병사구 사령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 가짜 제대증을 발급받아 지니고 다녔다. 078로 시작하는, 특수부대 군번이었다.

60년 어느 날 의정부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 서울로 나오는 막차를 탔다. 군 트럭을 개조한 8인승 합승버스였다.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인 창동에 군 검문소가 있어 차가 멈췄다. 이어 사복을 입은 특무대 군인이 올라오더니 신분증을 검사했다. 맨 뒷줄까지 온 그는 내 옆의 남자가 건넨 신분증을 받아 오랫동안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다. 기다리기 지겨워진 나는 제대증을 꺼내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빨리 좀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건방지게 구는군'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술에 취했던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흔들었다. 옆의 남자에게 신분증을 돌려준 그는 내 제대증은 본 척도 않고 내리라고 했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헌병 초소에 들어서니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됐다. "어디서 훈련받았나." "당신 상관이 누구였나." "훈련 내용은 어떤 게 있었나," …. 큰일났다. 군번이나 부대 이름, 훈련 장소 같은 기본 정보들이야 가짜 제대증을 받을 때부터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훈련 내용 같은 구체적인 것을 파고들어오면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하자 점점 날카로워지는 질문으로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꾀를 냈다. 완전히 술에 취한 척 하기로 한 것이다. 혀를 좀 더 꼬고 침도 옆으로 조금씩 흘리면서 시비조로 나갔다. "네가 뭐언데(꺼억), 특수요원 출신 대선배를 몰라보고(꺼억), 난리야, 이 새끼야(꺼억)." "뭐, 이 자식이 누구 앞에서 수작이야?" "뭐, 자식이라고?"

이렇게 티격태격 다투고 있으니 옆에 있던 헌병들이 거들었다. "상사님, 술 취한 놈 그냥 내보내버려요. 귀찮게…." "뭐, 놈이라고? 이것들이(꺼억), 어디서…." "알았어, 알았어, 다음 버스 오면 타고 가." 속으로 '됐다' 싶었다.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옳다구나 하고 넙죽 받으면 위험하다.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못 가! 내가 타고 온 건 합승이지 버스가 아냐. 합승버스 잡아와!" 이 한마디에 다들 골치 아프다며 나를 단념한 것 같았다.

이듬해인 61년 5.16이 나면서 병역 기피자들은 설 곳이 없어졌다. 서슬이 시퍼런 쿠데타 세력은 동네마다 애국반이라는 걸 만들어 가가호호 감시하며 병역 기피자를 솎아냈다. 결국 나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악극단 경험 덕택에 해병대 연예대에 배속됐다. 코미디언 임희춘씨, 가수 최희준.박일호.남백송.도미.방태원.박상록씨 등 모두 24명으로 꾸려진 연예대는 해병대 창설 기념일 등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도맡았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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