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사업 의혹] 사과박스 3개로 압수자료 옮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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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9일 "구속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는 물론, 전씨가 돈을 줬다고 진술한 지모씨로부터 단돈 10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집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도 "의혹의 빠른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고통을 감수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히 왕영용 철도공사 전 사업개발본부장이 청와대 김경식 행정관에게 사업 내용을 보고했다고 진술한 데 대해 "불과 25분 동안 77쪽짜리 서류를 보고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통령이 관련된 주제라면 일개 행정관에게 한 달 전에 보고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 행정관과는 모르는 사이"라고도 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내 입장은 원칙적으로 밝혔다고 본다"며 "가급적 신중하게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면 또 기자들이 찾아오지 않겠느냐"며 "(일단) 산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 국회에 들이닥친 검찰=이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207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된 것은 오전 11시30분쯤. 검찰 수사관 8명이 들이닥쳤다. 의원회관에서 압수 수색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영등포경찰서가 1996년 김덕규(당시 국민회의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사무실에 대해 불법선거운동 여부를 가리려 수색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이 국회 사무처에서 압수수색 사실을 알린 것은 오전 11시쯤이다. 사무처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논의하던 중 이 의원 측에서 "수색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알려와 마찰은 없었다.

수사관이 들이닥쳤을 당시 이 의원은 오전 일찍 사무실에 들렀다가 점심 약속이 있다며 나간 직후였다. 의원실 관계자들은 "검찰이 수색해도 전혀 나올 게 없다"면서도 굳은 표정이었다. 평소 열어 놓던 사무실 문은 수색 도중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면 의원실 관계자들이 "조사 중이니 나가 달라"고 했다.

수사관들이 1차 수색을 끝낸 것은 오후 2시50분쯤. 1차 수색을 끝낸 뒤 검찰 수사관들이 사과상자 크기의 소형 박스 3개에 압수한 자료를 담아 차에 실은 뒤 검찰로 향했다. 나머지 수사관 3명이 수색을 마무리했다. 이들도 오후 3시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날 압수수색에서 검찰 수사관들은 이 의원 사무실의 컴퓨터를 직접 들고 가지는 않고 데이터만 디스켓에 옮겨 갔다. 수색 뒤 사무실 관계자들은 어디론가 상황을 보고하느라 분주했다.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은 여전히 막았다. 기자들이 "수색이 또 이뤄진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한 보좌관은 "또 오라고 해라. 우리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했다.

신용호.전진배.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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