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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홍수' 벗어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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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역 간 균형개발에 대한 참여정부의 의지와 신념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와 신념에 의해 새롭게 제정되고 수립되는 제도와 정책이 너무 많아 균형개발에 대한 기대보다는 오히려 우려를 낳을 정도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기업도시특별법 등 많은 특별법이 제정됐다. 또 균형개발을 선도할 도시의 유형도 행정중심도시.내륙지방거점도시.교육도시.혁신도시.과학도시.기업도시 등 지나칠 만큼 다양하게 제시됐다. 어찌 보면 정부 내 각 부처가 특별법과 도시유형을 경쟁적으로 쏟아낸 것 같다. 정책을 개발한다기보다는 정책을 작명하는 데 치중한 느낌마저 준다.

진정 의미 있고 유효한 균형개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첫째, 제정된 특별법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특별법에 근거해 도시가 개발될 때 그 개발이 지역 내 공간체계를 어지럽히고 무질서한 개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특별법에 의한 개발은 기존의 개발과정이 많이 축소돼 거시적 측면에서의 개발효과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주체와 관계부처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협의 체제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잦은 도시개발의 유형 제시도 가능한 한 그만해야 한다. 도시 유형이 너무 다양해 우선은 혼란스럽고, 듣기에 따라서는 말장난 같기도 해, 결과적으로 정부의 위신과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에 적합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균형개발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근본적 어려움은 바로 국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지역의 환경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채 자원과 기능을 획일적으로 국토공간상에 배분하는 정책은 결코 의미 있는 균형개발정책이 될 수 없으며 실제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지역 환경이 달라 해외에서 성공한 정책이더라도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성공적인 지역정책의 핵심은 바로 지역 적합성에 있다. 지역에 적합하지 못한 정책은 단기적 효과만 있을 뿐 궁극적으로는 자원만 낭비하는 실패한 정책이 된다. 현재 추진 중인 행정 및 공공기관의 지방이전도 무조건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변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이전할 기관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정책들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갖는 균형개발의 사회가치가 수도 이전을 계획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면,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경제 및 산업정책은 당연히 균형개발 차원에서 검토돼야 하며, 검토 결과에 의해 집행의 우선순위도 결정돼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을 심화시키는 정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균형개발정책을 추구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균형발전을 초래하는 정책을 집행한다면 균형개발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참여정부의 10대 성장동력산업 지원 육성 계획 과정에서 지역 간 균형개발이 어느 정도 심도 있게 다뤄졌는지 불분명하다.

지난 30년간 균형개발을 위해 수립된 정책과 전략을 헤아리면 모두 200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정책과 전략이 집행되었는데도 국토의 불균형발전이 심화돼 왔다는 사실은 균형개발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그러므로 정부는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급한 마음을 버리고 차분하게 균형개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특별법도 제정하고 다양한 정책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제도와 정책은 오히려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배 한양대 교수.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