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투자 ABC] 자문형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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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혹시 ‘나도 자문형 랩에 들어볼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 주식 시장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 하도 자문형 랩이 난리니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문형 랩 계약액은 올 3월 말 6519억원에서 7월 말에는 2조4289억원으로 불과 넉 달 새 네 배로 됐다. 오죽하면 ‘부처님 오신 날 절간보다 요즘 자문사(寺)가 더 붐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자문형 랩이 인기인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률이 좋아서다. 아시다시피 자문형 랩은 증권사들이 투자 종목이나 투자 비중 등에 대해 자문사의 코치를 받아 운용한다. 올 들어 자문형 랩은 이른바 ‘7공주’니 ‘4대천왕’이니 하는 핵심 종목에 집중 투자해 주식형 펀드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주가지수가 그저 오르락내리락 하기만 하는 장세에서 자문형 랩이 상승 종목을 잘 집어내 수익을 올리자 개인투자자가 몰린 것이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자문형 랩 바람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자문형 랩의 문을 두드리려면, 주식 투자 실력이 고수·중수·하수 중 중수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유는 이렇다. 자문형랩은 성장성이 큰 일부 종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오를 때는 많이 오르지만, 반대로 하락장에서 손실을 볼 위험도 크다. 일종의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다. 이런 상품은 자산을 적절히 나눠 투자할 줄 알고, 손실이 났을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개인투자자들에게 적합하다.

웬만큼의 주식 투자 경험과 노하우 없이 자문형 랩에 올인했다가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문형 랩은 적절한 주식 투자 경험과 함께 “투자자문사가 나보다 좋은 종목 찾아내는 능력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믿는 투자자들에게 걸맞은 상품이라 하겠다. 아직 이 정도 급에 이르지 못한, 그러니까 태권도로 따져 흰 띠나 노란 띠 정도에 해당하는 초보 주식 투자자라면, 자문형 랩보다 전반적인 수익률은 떨어지지만 위험도 덜한 주식형 펀드를 통해 서서히 워밍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매주 목요일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이 쓰는 ‘투자ABC’를 연재합니다. 화제가 되는 이슈에 대해 투자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길라잡이를 하는 코너입니다. 김정훈 팀장은 1998년 말부터 11년여 동안 투자전략 애널리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지난해 잠시 펀드매니저로 변신했다가 ‘천성에 아닌가 보다’ 싶어 애널리스트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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