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금융 석학’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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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룸버그]

더블딥(반짝 경기회복에 이은 재침체)이라기보다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회복’.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케네스 로고프(57·경제학·사진) 하버드대 교수가 본 미국경제 전망이다.

그는 최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금융위기 뒤의 회복은 일반적으로 느리고 고통스러웠다”며 “미국경제는 지금 그와 매우 유사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대의 높은 실업률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느리고 고통스러운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그리 크게 보지 않았다. 그는 “회복이 느리다고 해서 아예 멈춘다곤 볼 수 없고, 곧 또 다른 대공황이 임박했다고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는 급증하고 있는 국가 부채를 지목했다. 그는 유럽 지역의 국가부도 가능성은 여전하고, 미국의 부채도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경기가 더 악화될 경우 재정투입보다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부동산 거품을 꾸준히 경고해 온 그는 “한국에선 당장 부동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순 없지만, 통화·감독 당국은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달리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미국을 따라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 가치가 과도하게 절상되는 걸 막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할 경우 결국 물가급등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진단과 처방을 방대한 과거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도출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저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서 세계 금융위기의 역사를 분석했으며, 최근엔 국내 출판사(다른세상)를 통해 그 한국어판을 냈다. 800년에 걸쳐 66개국에서 벌어진 금융위기 관련 자료를 분석한 이 책에서 그는 “금융위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무수히 반복돼 왔고, 위기가 터지고 진행되는 양상은 시간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공저자인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대 교수도 최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례 심포지엄에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경제는 향후 10년, 또는 그 이상 느린 성장과 고실업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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