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준비 며칠 한다고 20~30년 과거 덮을 수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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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04면

민주당 이용섭(초선·광주 광산을·사진) 의원은 ‘청문회의 달인’으로 불린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위원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지난 정부에선 세 차례나 ‘검증대’에 섰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세청장(2003년 3월)→행자부 장관(2006년 3월)→건교부 장관(2006년 12월)을 지내며 청문회를 치렀다. ‘창’과 ‘방패’를 모두 경험한 정치인이다.

‘청문회 달인’ 이용섭 의원이 말하는 인사청문회

달인의 면모는 청문회 첫날 드러났다. 김 후보자가 부인의 뇌물수수 의혹을 제기한 이 의원을 향해 “사과하라”고 선제공격을 가하자 그는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억울한 심정 이해한다. 저 역시 (청장·장관 후보자로) 청문회 하면서 잠 못 잤다. 후보자는 거창에서 군수 하고 지방에서만 도지사 하다 올라오셔서 그런 아픔을 이해 못 하시나본데 공직(자의 길을) 가려면 감수해야 한다. 공직은 헌신하고 봉사하고 절제하는 자리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선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의혹 등이 쏟아져 나왔다. 또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 잣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후보자에 대한 본회의 인준 표결이 무산된 27일 국회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총평을 한다면.
“개각을 하면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개각은 목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회장 하실 때 맘에 맞는 식으로 임원 꾸리듯 (내각을) 꾸린 것 같다. 하지만 총리나 국무위원은 다르다. 국민이 주인이다. 소통에 역점을 둔다고 한 대통령이 주인의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의 맘에만 드는 사람을 임명했다.”

-총리 후보자와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에 대한 의견은.
“한국사회에서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게 도덕성이다. 김 후보자는 나이가 48세, 경력이라봐야 영남에서 지방행정 경험밖에 없는데 나이가 50, 60대로 훨씬 많고 경력·경륜이 화려하고 전문성도 뛰어난 장·차관들을 총괄 조정하려면 유일하게 하나 있어야 할 게 도덕성이다. 그런데 총리 후보자는 기본적으로 도덕성이 일반직 공직자의 평균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데 어떻게 내각을 총괄 조정하고 공직사회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 총리 후보자는 절대 부적격이다. 다만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는 여러 문제가 지적됐지만 다른 후보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은 편이었다고 본다.”

-전 정부에서 세 차례 검증대에 선 경험이 있고 이번엔 ‘시험관’이 됐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경험한 분으로서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춰서 후보자를 검증해야 한다고 보나.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는 무슨 얘기를 하면 국민들이 박수 칠지 다 안다. 그래서 말보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봐야 한다. 과거 행적이나 도덕성을 보는 이유다. 과거에 한 말이나 정책, 도덕성을 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검증이라고 생각한다. 김 후보자의 경우, 말 바꾸기의 달인이고 이벤트성 전시행정의 대가다. 김 후보자는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나 국가발전·국민을 위해서도 이번엔 길게 호흡하면서 쉬는 게 어떨까 한다.”

-자진 사퇴하라는 건가.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게 맞다.”

-입장을 바꿔보자. 후보자가 검증대를 잘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청문회에 세 번 선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제일 중요한 건 준비가 아니고 깨끗하고 청렴하게 사는 거다. 아무리 노력하고 며칠 동안 준비를 해도, 과거 살아온 20~30년을 덮을 순 없다. 고위 공직자로서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꿈이 있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살아라,그것보다 더한 준비는 없다. 또 능력 없는 사람이 가장 충성하는 것은 중요한 자리에 안 나가는 것이다. 개인이 사업할 때는 실패해도 가족에게만 피해를 끼치지만 공직자가 정책을 실패하면 국가와 이해 관계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능력 없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안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청문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
“심적 갈등의 문제였다. 국세청장 후보자는 나와 두 번이나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다. 재무부 과장 때 사무관이었고, 국세청장 때는 본청 과장을 했다. 총리 후보자는 행자부 장관 할 때 경남도 지사로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청문위원으로서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에 현실적 역할, 역사적 소명의식에 충실하는 게 이 시대 공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후자에 역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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