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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과 국익이 충돌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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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란과 연간 100억 달러 규모의 교역을 통해 국부(國富)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대다수 유럽국가들보다 교역 규모가 더 큰 것을 보면 도대체 언제 우리 기업들이 이곳까지 진출했나 싶어 존경심까지 생긴다. 이들의 땀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대(對)이란 제재 조치에 당연히 신중해야 한다. 부시 정권 당시 백악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2006년 한국이 이란에 대해 소규모 제재를 가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이란은 길거리에 있는 모든 한국 기업의 광고판을 철거했다”며 “한국 정부의 고민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이미 강력한 보복 가능성을 공개 천명한 상태다. 정부가 제재 동참 결정을 최대한 미루는 데는 한국 기업들의 ‘생존 루트’ 확보를 위한 시간 벌기 성격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 제재에 하루 속히 동참하는 일도 국익에 부합하는 행위다. 오바마 정부는 한국에서 이란 제재 문제가 결국 한·미 양국 간 문제로 귀결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 데 여간 난감해 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란 제재를 독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한·미 간 문제만은 아닌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란 제재는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것과 똑같이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사회가 합의한 사안이다. 북한의 핵 개발 야욕 분쇄를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우리의 상황과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에 걸맞은 명분 있는 행동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임을 감안하면 제재 참여 역시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한·미 간 산적한 현안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두 개의 국익 속에서 접점을 찾는 일은 솔로몬의 지혜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온전히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접점을 찾는 순간 최선의 경우는 날아가 버리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달로 33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는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 대사는 올해 출간된 한 책에서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다급한 일이 중요한 일을 밀어내고 있었다. 당장 닥친 일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더욱 광범위한 목적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때 현실적인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장기적인 목표가 단기적 문제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핵 없는 이란, 핵 없는 북한이 한국 사회와 한국 기업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