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고속도 인천 구간 지하화 철회 … 주민들 “대안 없는 백지화” 큰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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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천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인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는 계획이 백지화됐다. 인천시는 “경인고속도로 지하화에 필요한 1조원 규모의 재원 조달이 어렵고 건설 이후에도 유지관리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점 등을 감안해 지하차도를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에 대해 가좌동 등 서구지역 주민들은 지역개발을 포기하는 졸속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는 40여 년이 넘게 도심을 양분해 도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경인고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정부에 일반도로로 바꿔줄 것을 요구해 왔다. 상습정체로 고속도로가 기능을 잃은 데다 고속도로 주변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부는 인천항의 물동량 처리를 위해서는 고속도로로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와 인천시는 지난해 4월 도심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는 대신 상부구간은 일반도로로 바꾸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서인천IC∼가좌IC 5.7㎞ 구간에 4차로의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후 인천시는 51억원의 용역비를 들여 지하도로 설계에 착수했다. 그러나 추정 사업비가 당초 45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어나자 최근 설계 용역을 중단하고 사업 재검토에 들어갔다. 인천시 관계자는 “지하도로 건설에 필요한 1조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동시에 이 사업과 연계돼 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인천지하철 2호선을 예정대로 개통하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지하화를 포기한 대신 정부와 재협상을 벌여 경인고속도로의 인천구간(서인천IC∼용현동 11.8㎞)에 대한 관리권을 넘겨받아 일반도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구간의 관리권이 인천시로 이관되면 10개 차로 가운데 6개 차로는 차량을 통행시키고 4개 차로는 보행자 중심의 가로공원으로 만들어 특화거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특화거리로 조성될 4개 차로는 기존 고속도로의 측도(側道) 부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해당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대안 없는 백지화’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주변 지역의 주민 박태춘(54·인천시 서구 가좌동)씨는 “수십 년간 개발이 가로막혀 온 지역을 포기하는 처사”라며 “지하화가 백지화되면 이곳의 도시재생사업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박승희(한나라당) 인천시의원은 “지하화 포기는 경인고속도로 문제 해결을 10여 년 후퇴시킨 것”이라며 “지하화가 안 되면 고속도로 폐기를 위해서라도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거부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국장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를 포기하려면 인천항과 주변 산업단지 등의 교통수요 처리에 대한 정교한 사전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일반도로 전환을 거부하는 정부의 방침이 바뀌지 않은 시점에서 이에 상응하는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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