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주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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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민에 열린 정부' 만들기에 나섰다. 국민에 다가서는 정치, 국민의 뜻을 섬기는 정치,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제 인수위의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과제들을 논의할 것이니 기대해 본다. 다만 같은 정책이라도 '정치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수월하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감동을 주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감동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이제 우리 대통령도 감동적이어야 한다. 국회 연설이든 TV 회견이든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정책에 대한 호응을 촉구하는데 인색해선 안된다. 유권자들의 감성(感性)덕을 톡톡히 보고 당선된 대통령인지라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어떤 시대냐. 시민단체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언론의 감시도 녹록지 않다. 또 국제화 시대에 세계와 동떨어진 정책은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 대통령 주변의 인재들이 한결같이 비겁한 아첨꾼들만 아니라면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펼칠까 하는 걱정은 접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국민을 감동시킬 줄 아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공화당의 12년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8년 간 미국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은 국민의 가슴을 울리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국정(國政)에 대한 이해력도 빨랐다. 속독술을 익혀 책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흠이었는지 모르나 선거 때마다 여성표 상당수가 그를 찍었다. 클린턴의 정치특보를 지낸 조지 스테퍼노펄러스는 우리 식으로 말해 대통령의 가신(家臣)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참모들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서 항시 멋진 연기를 보여준 대통령의 능력에 경이를 표했다. 나는 이제 우리 국민도 자신을 감동시킬 줄 아는 지도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 지도자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넉넉한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돼있다고 본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 깊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지도자의 행태는 곤란하다. 또 우리 자신이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조금은 위험한 민족이란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지라 무시당하곤 견디지 못한다. 반미정서가 저항없이 번진 배경에는 미국의 오만함을 못참는 우리의 자존심도 한몫 했다. 아무튼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로되 분별없이 불지르진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나 나라에 대한 자해(自害)행위일 뿐이다.

감동을 주는 대통령에겐 참신한 제스처도 필요하다. 다시 클린턴 얘기다. 그는 1992년 말 당선과 취임 사이에 자신의 출신지 아칸소주의 리틀 록에 경제전문가와 전·현직 관리들을 불러모아 여러 차례 난상 토론을 벌였다. TV와 지면을 통해 전달되는 대통령의 신선함과 진지함에 미국민들은 감격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준비된 대통령을 기다리면서….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경제 악화가 당시 미국사회의 주된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라면 북핵 문제나 한·미 동맹이 되겠지만 당선자가 취임 전에 이런 형식을 빌려 국민 앞에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기대는 내실있는 정책만으론 충족되지 않는다. 더욱이 감성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은 이제 지도자의 감동적인 제스처마저 원한다. 새 대통령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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