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노무현 당선자에 바란다:국민통합, 실천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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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무현(盧武鉉)민주당후보의 승리로 대통령선거는 끝이 났다. 후보 개인이나 정당의 입장에서는 승패가 갈렸지만 국가적으로는 또 한 번의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동서 간 표갈림 현상은 여전했고, 세대 간 갈등과 이념대립마저 심화돼 나라 전체가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이다.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통합의 6월이 조각난 분열의 12월로 변해 버렸다.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 통합을 위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선거결과를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보수에 대한 진보의 승리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대신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지난 5년간 국정운영을 높이 평가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국민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를 버리고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노무현 당선자가 이회창(李會昌)후보보다 현 대통령과 더 차별화된 이미지를 준 것이 승리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대통령임을 다짐해야 하고 지지자만큼 비슷한 국민들이 다른 후보를 지지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 변화와 개혁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똑같은 개혁이란 말을 쓰면서 한 사람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제개혁을, 다른 사람은 분배와 사회연대 강화를 위한 사회개혁을 이야기한다. 둘이 양립 가능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 상충돼 선택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교육과 의료는 국민생활의 필수적 요소로서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질을 희생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 평등이란 명분보다는 질적 수월성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다양한 종(種)이 모여 건강한 숲을 이루듯이 다양한 사고와 가치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며 편향된 소수의 의견에 집착하기보다는 보다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기를 기대해본다.

셋째,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과정과 방법이 신중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의 개혁과정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화된 소수가 특정전문가 집단을 몰아붙였다. 교육개혁과 의약분업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나름대로의 당위성이 있었던 정책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사회적 갈등을 크게 했던 것은 전문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의사결정보다는 정책 어젠다를 형성하기 위한 바람몰이식 접근으로 구체적 정책내용까지 결정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을 중시하되 차가운 머리로 냉정하게 따져보는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 노무현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구태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속도는 좀 늦어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국민을 통합시키는 방법이다.

넷째, 국민통합을 위해 말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 지역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승자가 됐던 과거의 대통령들도 지역구도 타파와 국민통합을 소리 높여 외쳤으나 해소는커녕 더욱 심화시켰다. 연고중심의 인사정책과 자원배분의 편중이 그 이유다. 이 정권에서 지역과 측근중심의 인사를 가리켜 점령군이 완장을 차고 호루라기 분다는 비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또다시 구호나 이벤트적 행사로 요란을 떨어도 오히려 냉소만을 보일 것이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盧당선자는 모든 국민에게 감사하고 패배한 후보에 대한 덕담과 위로의 인사를 했다. 이런 신선함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바르고 겸손한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과 주변이 바르면 소신을 지켜주는 힘이 되고 여론과 대화하는 용기를 갖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면 사람이 따르게 되어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이제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노무현 당선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민을 통합하는 선택을 할 경우 전 국민의 아쉬움 속에서 임기를 끝낼 수 있는 첫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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