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는 인문학의 위기라기보다는 인문학자들의 위기일 뿐이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바로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인문정책연구회(이사장 최송화)의 자문기구인 인문정책위원회(위원장 이태수)가 지난해 말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원인을 물은 결과 외적 원인과 함께 인문학자 자신들에게도 적지않은 원인이 있다는 반성이 많았다.
김덕구(건국대.한국사).김형철(연세대.철학).이태수(서울대.철학).정민(한양대.국문학).조한혜정(연세대.사회학).함인희(이화여대.여성학) 등 국내 저명 인문학.사회과학자들이 A4용지 2장 분량으로 이 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에 따르면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는 ▶미국식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학문정책▶외국 이론에 대한 의존▶현장성 부재▶인문학 생산자와 소배자 사이의 괴리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모든 것에 앞서 인문학자들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인문학 연구자가 타 분야와 교류하거나 대중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상아탑에 갇혀 자신들만의 논의에 그치거나 외국 이론을 수입하기에 급급했다는 풀이다.
이 위원회는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원인을 집중 분석하고 그 대안을 찾는 워크숍을 거쳐 인문학의 진흥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정책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열린 이 워크숍에는 강내희(중앙대.영문학).김혜숙(이화여대.철학).문희경(고려대.영문학).박지향(서울대.서양사).안삼환(서울대.독문학).이혜순(이화여대.국문학)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을 구가하려면 인문정책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인문사회연구회의 자문기구인 인문정책위원회가 과연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일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 최근 약 10명의 인문학자가 독자적으로 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이 논의를 이끌고 있는 한 교수는 "지금 한국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려면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적.도덕적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국가발전 전략의 차원에서 양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용을 지닌다"고 말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