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문세광 사건] 당시 사건 검사 김기춘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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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으로 뛰어가며 권총을 발사하는 문세광. 일본 파출소에서 훔쳐 밀반입해온 미제 '스미스 앤드 웨슨' 권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중앙포토]

1974년 8월 16일 오후 5시.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비서관이던 35세의 김기춘 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 검사는 곧 육영수 여사의 저격 용의자 문세광을 만나야 했다. 하루 전 잡혀온 문씨는 묵비권을 행사해 정보부 관계자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신 부장은 당시 '잘 나가던' 김 검사에게 문씨의 입을 열라는 특명을 내렸다. 고민에 잠긴 김 검사의 머릿속에 퍼뜩 얼마 전 여름 휴가 때 읽은 '자칼의 날(The Day of Jackal)'이 떠올랐다. '자칼의 날'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암살 미수 사건을 주제로 한 추리소설이다.

문씨를 만난 김 검사가 대뜸 "'자칼의 날'을 읽어보았느냐"고 묻자 문씨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곧 "선생도 그 책을 읽었느냐"며 침묵을 깼다.

20일 오후 국회에서 만난 김기춘 의원은 문씨의 입을 열게 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 의원은 "당시 문씨는 영웅심에 젖은 젊은 청년이었다"며 "육 여사의 서거 소식을 전해주자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청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육 여사 저격 사건은 조총련계에 포섭된 문씨의 범행이 분명하다"고 못박았다. 그는 외교 문서 공개에 따라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중요한 것"이라며 "외교 문서는 각 나라의 이익을 위해 서술된 것이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측의 수사 결과가 크게 다른 점에 대해 "일본에선 한 번도 문씨를 직접 조사한 적이 없다"며 "일본은 당시 국가 범죄가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니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만약 문씨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고, 우리가 수사 기록을 조작했다면 당시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에 특사를 보내 사과하는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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