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티즌의 아쉬운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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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크 정면에서 얻은 대전의 프리킥이 수비 벽을 맞고 나오자 주심이 길게 종료 휘슬을 불었다. 대전 이태호 감독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이내 사라졌다.

이감독이 나직이 말했다. "오프사이드 맞는데…."

올시즌 정규리그 중반 주심의 판정에 항의해 선수들을 철수시켜 7경기 출장 정지처분을 받았던 혈기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고개를 푹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에게 이감독은 "수고했다"며 일일이 등을 두드려줬다.

돌풍은 꺼졌고 희망도 사라졌다. 정규리그 27경기에서 단 1승만을 올리며 꼴찌를 했던 대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FA컵에서 '꼴찌의 반란'을 향해 달렸다. 더구나 자금원이었던 계룡건설이 "더 이상 지원이 힘들다"며 발을 빼는 바람에 내년 리그 참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우승은 생존의 문제였다. 선수도 부족하고, 선수들 대부분이 감기로 고생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8강전에서는 정규리그 8연승을 달렸던 울산 현대를 3-1로 꺾는 투혼을 보여줬다.

그러나 결승 길목에서 대전은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에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 후 대전 구단 직원들은 심판을 향해 육두문자를 써 가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감독은 오히려 차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준 선수들이 고맙고, 또 미안하다. 여건이 좋아져 내년 시즌 팀이 더 좋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만을 바란다." 마흔한살 젊은 감독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서귀포=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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