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 '라보엠' 초연 현장:'국내 자본 진출 1호' 뮤지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5면

1백만달러(약 13억원)의 한국 자본이 들어간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보엠'이 8일(현지시간) 저녁 뉴욕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 '물랭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 '라보엠'의 세계 초연에는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등 톱스타들이 대거 참석해 롱 런을 빌었다.

그러나 이날 극장에서 가장 눈에 띈 사람은 한 동양인이었다. 주인공은 설도윤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을 이끈 설씨는 여덟명의 '라보엠' 프로듀서(제작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이 뮤지컬의 제작비는 6백50만달러. 팸플릿의 제작자 명단에서 그와 투자사인 코리아픽쳐스의 이름을 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세계 상업예술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 공연시장에 이런 식의 참여는 우리 공연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설씨는 "한국 자본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우리 뮤지컬의 성장을 반영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자평했다.

뮤지컬 '라보엠'은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시인 로돌포와 이웃집 여자 미미, 화가 마르첼로와 그의 애인 무제타 등 파리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이야기로 시대 배경만 19세기에서 1950년대로 바뀌었을 뿐 음악이나 구조·내용 모두 원작 그대로다. 시대상을 담은 변화무쌍한 무대와 모던한 의상 등에서 뮤지컬적인 특징이 드러났다. 루어만은 "오페라를 어려워하는 관객들에게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뮤지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페라의 중후한 맛과 뮤지컬의 경쾌한 감각이 조화를 이뤄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루어만은 영화 '물랭루즈'에서 보여준 회화적인 영상미를 무대예술로 재현했으며, 그의 복고적인 취미를 드러내듯 시대에 대한 고증도 뛰어났다. 여주인공 미미 역은 50년대의 명배우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나와 열연했고, 무대의 전환을 수동으로 해 시대극적인 묘미를 한층 살렸다. 노래는 원작대로 이탈리아어로 불렸으나 영어 자막을 제공해 영어권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개막 전부터 '라보엠'은 '오페라적인 뮤지컬'이라는 특이한 형식 때문에 누가(오페라 담당이냐 뮤지컬 담당이냐?) 리뷰를 써야 할 것인가를 놓고 한동안 뉴욕 비평계를 술렁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쓰든 '라보엠'은 이른바 고급과 대중예술의 장르 복합이 활발한 최근 브로드웨이 공연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출신 여배우 웨이 황이 미미로 출연하는 등 다국적 배우들로 주역을 짜고 이들을 3개조로 나눠 요일별로 번갈아 투입하는 것도 '라보엠'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뉴욕=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