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의원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부끄럽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386출신의 한 초선의원이 쓴 '좌충우돌 육아일기'가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19일 저녁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반성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날 하루 직접 자녀를 돌본 사연과 소회를 공개했다. 그는 이글에서"국회의원으로 전업하고 살림형편이 많이 쪼그라들었다"며 이때문에 그간 직장에 다니는 부인을 대신해 세 자녀를 돌봐주던 보모에게 월급을 줄 수 없어 2주전 그만두게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던 누나도 이날 약속이 있어 그가 직접 세자녀를 돌봐야 했다는 것.

그러나'의원 보모'의 하루일과는 험난했다. 아이의 유치원 시간을 맞추지 못해 결국 아침을 못먹여 보냈고, 애써 만든 계란 프라이에는 소금 대신 미원을 쳐 못먹게 됐으며, 모처럼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가면서 여벌 바지를 챙기지 않은 바람에 중도에 돌아와야했다.

그는 이런 실수들을 통해 그간 가정사에 소홀했던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미국의 클린턴은 직업정치인이면서도 딸의 숙제를 봐주고 학부모 모임도 나가는 등 생활정치의 영역에도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며 "지금까지 큰 일 한답시고 정작 작지만 큰 일에 소홀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가 가정이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 힘쓰는 것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채우자는 것을 말하면서도 정작 본말이 전도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정말 반성한다"고 덧붙였다. 정의원은 전대협 동우회 부회장, 친여 네티즌 모임인'국민의 힘'대표를 거쳐 지난 총선에서 마포을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조민근 기자

다음은 정의원의 글 전문.

안녕하세요.

직업정치인 정청랩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밖을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직업을 잘 못 고른건지 국회의원으로 전업하고

살림형편이 많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저는 아들만 셋인데(아홉살, 일곱살, 세살)

제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출퇴근하는 보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갖다주는 돈이 없어

큰엄마(애들이 이렇게 부릅니다.)월급을 줄수가 없어

2주전, 아내가 해고(?)를 했더군요.

앞으로

아이들 유치원, 학교가는 것은

옆으로 이사를 온 누님이 돌봐주기로 했는데

오늘은 누님이 오래전의 선약때문에

그 책무를 제가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지요.

오늘 하루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일단 머리박고 고백하고 반성합니다.

유치원에 가는 둘째 한결이 밥을 못먹여 보냈습니다.

9시 5분에 집앞에서 유치원차를 타야하는데

저는 9시30분으로 잘못알고 있다가

차가 와서 빵빵거리는 바람에 그만......

반성합니다.

둘째는 못먹여 보냈더라도

'첫째와 셋째는 잘먹이리라'고 다짐하며

계란후라이를 한다고 했는데

후라이판에 콩기름 붓는것 까지는 좋았는데

맛소금을 친다는게 그만 미원을 넣었나 봅니다.

아이들이 느끼하다고 먹지를 않더군요.

반성합니다.

모처럼 아빠노릇 한다고

아이들 데리고 롯데월드에 갔더랬습니다.

수행비서인 맥스, 그 여자친구와 함께 갔는데

그것이 고마워 할인매장에서 여자용 니트웨어를 하나골라

사주려고 하는데 그만 그것이 남자용이었습니다.

순간 참 당황스럽더군요.

남자용과 여자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옷색맹...

머리숙여 반성합니다.

롯데월드에 돌아다니는데

정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군요.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배를 타고

회전목마 순서를 줄서서 기다리는데

일곱살짜리 둘째가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한 5분간 뚤레뚤레 찾으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데

아니 이녀석이 새치기를 하여

벌써 회전목마에 타고 있더군요.

공중도덕과 줄서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

정말 반성합니다.

막내 세살배기는 쉬를 가릴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여 쉬통(우유통)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그만 회전목마 타기 직전에 실례를 질펀하게 했더군요.

젖은 바지를 들어올려 회전목마를 같이 타기는 했지만

내 뒤에 탈 어린이에게 무지하게 미안했습니다.

머리 더 숙여 반성합니다.

롯데월드에서 겨우 2시간

셋째가 쉬를 할 것을 대비해

여벌로 바지 하나를 준비해 왔어야 하는데

그걸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아이 아랫도리가 감기가 걸릴까봐

그냥 돌아올수밖에 없었습니다.

풍선타기, 모노레일타기, 귀신관, 청룡열차...

못타고 못보고 그냥왔습니다.

반성합니다.

미국의 클린턴 전기에 보면

그는 직업정치인이면서 딸 체시의

숙제도 봐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고

학부모 모임도 나가며 생활정치의 영역에도

소홀함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큰 일을 한답시고 정작 작지만 큰일에

너무 소홀한 것 정말 반성합니다.

작은 것이 합쳐지지 않으면 큰것은 없다.는 사실,

한걸음을 떼지 못하면 열걸음도 없다는 사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가 가정이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 힘쓰는 것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채우자는 것을 말하면서도

정작 본말이 전도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정말 반성합니다.

제 아내에게

밖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소홀히 한것 반성하고

아직도 국참연에 가입을 권유하지 않은 것도 반성하고

아이들의 커가는 과정에 아빠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것도

주변에도 취지와 정신에 대한 공유를 소홀히 한 것

정말 머리박고 반성합니다.

오늘 저녁때는

계란후라이 제대로 하고

김치볶음밥 맛있게 하여

우리 가족 식탁에 올리겠습니다.

2005년 1월 19일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

정청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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