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압사와 反美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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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간접 사과에도 불구하고 두 미군의 무죄 평결을 규탄하는 항의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민중대회가 다투어 열리고, 백악관에 항의 전자우편을 보내는 네티즌들의 연대행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촛불시위가 서울 광화문 밤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미군 재판 결과에 한국인치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판관할권이 미군 측에 있고, 사법체계 및 법 문화 차이 때문에 우리 측 법 감정만 고집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우리는 누차 지적해 왔다. 중요한 것은 현행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서 불평등한 규정과 독소 조항을 도려내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이 사건이 평등하고 호혜적인 21세기 한·미관계 전개의 계기가 된다면 두 여중생의 희생을 더 이상 값지게 하는 길도 없다고 본다.

우리가 당면한 걱정은 SOFA의 현실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반미(反美)의 '의식화'내지 사회운동화 쪽으로 비화하고 있는 점이다. 근본 원인이 주한미군에 있다며 미군 철수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있다. 미군 법정의 사법적 판단이 끝난 상태에서 재판을 무효화하고 두 미군을 한국 법정에 세우자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두 미군의 지휘계통들은 공표를 안했을 뿐 이미 징계 등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 문책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고 SOFA 재개정을 관철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 부시 대통령도 '재발 방지를 위한 긴밀한 협력'을 다짐한 바 있다.

SOFA에 대한 '훈화수업'으로 초·중·고생들을 의식화하려들거나, '반미 가요'및 장갑차 퍼포먼스로 반미 열풍을 부채질할 때가 아니다. 대선 후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포퓰리즘적 선동을 자제해야 한다. 여중생 압사 문제와 반미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이성적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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