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접근로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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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금강산관광지구법'에 이어 '개성공업지구법'이 공표됨으로써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기대됐던 북한의 대외개방 그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신의주는 금융, 금강산은 관광, 개성은 공업분야에 중점을 두면서 신의주는 서방(EU) 및 화교자본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판 홍콩·마카오의 건설을, 금강산과 개성은 남한 자본과의 협력을 통해 서방으로 진출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이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개성일 것이다. 고려왕조의 수도로서 유서깊은 곳에 남한 주도의 공단건설이 가시화된다는 역사적 의미를 떠나 경제적 측면에서 개성공단이 갖고 있는 함의다. 우선 입지적 요소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보면 서울·인천 수도권의 성장세의 한 흐름이 영종도로, 다른 흐름이 김포·일산을 넘어 개성으로 파급돼 모두 황해로 흘러드는 반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즉, 개성은 육·해·공 물류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고, 수도권이라는 근접한 수요시장을 갖고 있으며, 인천·안산 등 경기권에 북한이 목표로 하는 경공업의 육성에 적합한 다수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은 거점적 요소다. 개성은 남한의 경제적 활력이 북한으로, 동북아로 뻗어가는 형세여서 첫 관문에 해당된다.

그동안 동북아 경제협력의 중핵 사업으로 각광을 받았던 두만강 지역 개발사업은 1997년 말 이후 북한의 소극적 개발과 남한 기업의 참여 봉쇄로 그 실적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금강산 사업의 성사 이후 남북한 경제협력은 점차 황해로 뻗어가는 모양세를 갖고 있으며, 그 와중에 새로운 공단의 후보지로 개성이 부상했다.

과거 북한이 역점을 두었던 나진·선봉, 그리고 최근에 공표된 신의주 특별행정구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은 특구에 대한 접근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 양빈(楊斌) 장관의 임명을 통해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에 착수했지만 비자 발언 파동에서 보듯이 중국과의 조율 실패로 특별행정구의 건설이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다시 말해 독자적인 접근로의 확보가 필요함을 시사한 것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신의주 개발 의지는 남다른 것 같다.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회장에게 서해공단의 후보지로 신의주를 거론한데 이어, 그의 역사적인 상하이 방문 이후 귀로에서 신의주 경공업공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연출했으며, 2002년 9월에는 유럽 기업들을 평양에 초청해놓고 신의주를 홍콩식으로 개발한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신의주 개발과 개성공단 간의 상호보완성이다. 개성공단의 건설 위에서 신의주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메인 성장축은 부산-서울-개성-평양-신의주-선양-베이징이며, 그 시발이 바로 개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성공단의 특구 지정은 환영할 만하다. 이 법의 제정과정에서 남측의 의견을 많이 수렴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의 정세가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를 둘러싼 불협화음 등 군사·안보적 요인에 크게 좌우되면서 예정대로 개성공단의 착공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개성공단은 개성지구법의 후속 규정·세칙 제정,토지이용·노임 등 각종 가격의 결정,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협력, 투자 유치 및 재원 조달 방안 등 남북이 합의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실정이다.

경의선 철로·도로 연결을 통한 개성공단에로의 접근로 확보부터 삐걱거린다면 개성공단의 국제경쟁력 확보는 요원할 것이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 중유 제공 및 WFP를 통한 추가 식량 지원 중단 등 포용보다는 경제 봉쇄 쪽으로 이행하는 듯한 미국 등 모두 북한의 개혁·개방에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미·북은 대화로서 핵문제를 풀기를 기대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성공단의 성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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