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 싹 바꾼 재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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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특별소비세를 물고 무쏘 스포츠를 산 고객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낸 세금을 대신 물어줄 수도 없어 일일이 응답하느라 하루종일 진땀을 뺐습니다."

쌍용자동차 대리점의 한 영업사원은 재정경제부가 22일 5인승 승용픽업에 대한 특소세 과세방침을 불과 한달 만에 뒤집은 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혼란은 재경부가 지난 9월 무쏘 스포츠에 대해 "승용 공간이 화물 적재공간보다 넓고 광고도 레저용 픽업으로 한 점으로 미루어 승용차로 분류된다"며 특소세 부과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쌍용자동차는 "건설교통부의 형식 승인에서 화물차로 분류됐다"고 주장했으나 재경부는 "특소세는 승용차의 실질적인 용도에 따라 부과 여부가 결정된다"며 이를 묵살했다.

국회에서도 특소세의 승용차 분류 기준이 자동차관리법과 달라 혼란이 빚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재경부는 당시 관련 규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적도 없다.

그러나 미국이 무쏘 스포츠와 디자인이 비슷한 5인승 픽업트럭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의 다코타에 대한 특소세 부과 문제를 한·미 통상 현안의 주요 의제로 올리자 재경부의 태도는 돌변했다.

다코타는 뒤에 요트 등을 싣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고급 레저용 픽업으로 대당 가격이 4천6백만원에 이른다. 특소세법의 원래 취지에 따르면 당연히 세금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재경부는 21일부터 열린 한·미 통상 현안 실무점검회의에서 미국 측의 압력이 거세지자 바로 특소세법 시행령을 바꾸기로 했다. "자동차관리법 규정과 달라 발생하는 국민 불편을 해소한다"는 배경 설명도 곁들였다.

이미 4백만원 정도의 특소세를 물고 무쏘 스포츠를 산 고객들이 이 말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질 것이다.

재경부는 지난해 말에도 2003년부터 9∼10인승 차량에 특소세 10%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해 놓고 업계에서 반발하자 슬쩍 뒤로 물러선 '전과'가 있다.

세금정책은 일관된 원칙이 중요하다. 힘 센 나라의 통상압력이나 업계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세제가 오락가락 한다면 납세자들이 승복하기 어렵다.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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