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누가 되든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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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대통령후보는 22일 아침 대전MBC 방송토론 녹화 직전에 메모를 건네받았다. 민주당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재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녹화 때 李후보는 "단일화를 걱정하는 듯 비춰질까봐 자주 얘기 안했다"고 말했다. 내심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단일화에 대비한 행보를 하고 있다. 당에선 지구당위원장들에게 지역구에서 뛰라고 지시했다.

토론에서 李후보는 단일화와 관련한 질문에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한밭대 강연회에서도 李후보는 "누가 되든 좋다. 누가 나타나든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단일화에 정당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李후보는 "정치가 아무리 급하고 이득을 좇아가는 것이라 해도 정당한 이념과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측근들은 李후보가 후보 단일화 논의를 "오로지 1등을 꺾기 위한 우스꽝스러운 협상"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李후보는 "지금 3자 대결이 2자 대결로 단순화된다고 해서 반드시 단일후보에게 다른 쪽 표가 가는 게 아니다. 정치는 산수(算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책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후보의 결합이 유권자의 결합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李후보는 최근 당내 여론조사에서 단일화한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데 대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낙관한다고 한다. 20, 30대 감성적 지지그룹이 조만간 단일화 쇼크에서 벗어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한편 李후보는 이날 밤 두 후보 간 TV토론의 앞부분만 묵묵히 지켜봤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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