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 정몽준 TV 토론]盧 짧게 맞받아 역습 鄭 시간 넘기며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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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후보의 1백12분간 TV토론은 상대의 허점을 놓치지 않는 치열한 공방으로 시종 긴장이 감돌았다. 단일화 여론조사를 앞두고 딱 한번 주어진 검증무대라는 점에서 절박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鄭후보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자세로 주도권을 쥐려 했고, 盧후보는 방어적이면서 짧은 역습으로 포인트를 따려 했다. 미소와 웃는 모습은 鄭후보보다 盧후보가 많았다.

盧후보에겐 안정감이, 鄭후보에겐 의욕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발언시간 초과로 종소리 경고를 받은 횟수는 鄭후보가 盧후보의 세배쯤 됐다.

두 사람은 인사말에서 "盧후보는 저의 동지이자 경쟁자"(鄭후보), "짧은 기간이나마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盧후보)고 덕담을 주고받자마자, 날카로운 공수체제로 전환했다.

盧후보는 후보단일화 합의와 관련해 "내가 鄭후보의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했음에도, 鄭후보가 너무 많은 문제를 제기했고, 이미 합의한 것도 재합의하자고 했다"며 "경제적인 상거래도 한번 약속하면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고 공격했다.

鄭후보는 "盧후보가 사퇴하면 그 표는 나한테 오지만, 내가 사퇴하면 그 표는 이회창(李會昌)후보한테 간다"며 자신의 '경쟁력 우위'를 반복해 강조했다.

단일화 논쟁이 상호 비난으로 고조될 즈음, 鄭후보가 盧후보의 말허리를 잘라 "그 얘긴 그만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돼선 안되는 이유를 말해보자"고 제의했다. 鄭후보는 "李후보는 연세가 너무 많다"는 등 미리 준비한 네 가지 이유를 댔다.

방송사 측에선 토론에 들어가기 전 '제3당의 후보를 비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이 깨지는 것 아니냐고 조마조마했다는 후문이다. 사회자 송지헌씨는 "두 후보가 정책중심으로 토론해주기 바란다"고 토론흐름을 조정하기도 했다.

盧후보가 친인척 관리·정경유착 문제를 묻자, 鄭후보는 "盧후보께서 기업경영을 안해보셔서 그런 것 같은데…"라며 흥분했다. 반면 鄭후보가 盧후보의 노동자 편향 이념성을 제기하면서 계속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盧후보는 정색을 하고 "내 답변시간을 뺏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鄭후보는 사회문화 분야 마지막 질문에서 "제가 준비한 내용을 다 썼는데 정치분야를 질문하면 안되겠느냐"고 묻자 盧후보는 "그렇게 하시라"고 응해줬다.

이에 앞서 목동 방송회관 토론회 현장은 양당 관계자와 취재진 2백여명으로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두 후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싸늘하게 침묵이 흘렀다. 6시18분쯤 鄭후보가 나타났고 1분쯤 뒤에 盧후보가 등장했다. 둘 다 표정은 밝지 않았다.

鄭후보는 분장실에서 부인 김영명씨가 건네주는 과일을 먹으며 모두연설을 반복해 연습했다. 盧후보는 의원들과 환담을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방송 시작 15분 전에 대기실을 나온 盧후보는 "그동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국민을 믿고 결단했다"며 "오늘도 국민을 믿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鄭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단일 후보가 되겠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만난 두 후보는 가벼운 악수로 말없이 인사했다.

鄭후보는 "토론회를 열번은 해야 하는데 한번밖에 못하게 됐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고 기자들에게 조크했고, 盧후보는 "축구시합 한번 하는 것과 토론회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쉽습니까"라고 鄭후보에게 말을 건넸다.

전영기·서승욱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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