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감독관 맡기고… 엉터리 채점도… 국가자격시험 관리 '불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달 수원시 매탄동 매원중에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렀던 金모(58)씨는 45분 늦게 시험지를 받아 허겁지겁 답안을 채워야 했다.

시험지가 모자라 감독처인 산업인력관리공단 측이 복사해 올 때까지 뒷자리 수험생들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복사한 시험지가 군데군데 잘 보이지 않은 데다 먼저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복도에서 와글대는 통에 결국 시험을 잡쳤다. 이날 金씨처럼 피해를 본 사람은 공단 측 집계로 1천여명, 중개사 업계 추산으론 전국 1만여명이다.

공단 측은 응시생 수가 예상보다 많아 미처 시험지를 준비하지 못했다지만 이미 보름 전 수험생 수는 확정돼 있었다.

6백여개의 국가자격시험을 관장하는 산업인력공단의 시험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엉터리 관리=무자격자의 시험감독관 위촉, 엉터리 채점도 자주 문제가 된다. 공단 자체감사 결과 대구지방사무소는 감독관 자격이 없는 20세 미만 청소년 네명을 15차례나 각종 자격시험에 감독관으로 위촉했다. 공단직원의 가족들이었다.

충북사무소의 경우 감독관으로 위촉된 사람이 멋대로 다른 사람을 대리감독시킨 사례가 94명이나 됐다. 1999∼2001년 공단 경인본부와 영남본부에서만 자격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시험감독을 시킨 경우가 1천1백67명이다.

채점을 잘못한 사례도 많다.

최근 위험물관리기능사 시험은 수험생들의 집단민원에 따라 합격자 발표 후 재확인한 결과 정답이 잘못된 사실이 드러났다. 58명의 점수가 수정됐고 4명의 불합격자가 추가 합격됐다. 이런 식의 채점 오류가 지난해에만 12건(공단 집계)이다.

◇너무 많은 자격증… 정비도 어려워=이런 부실에는 자격검정업무 담당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한 배경이 되고 있다.

전국 23개 사무소에 배치된 1백60여명(계약직 포함)이 한해 2백만명 이상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시험계획부터 원서 접수·장소 선정·감독관 선정·채점까지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이번 중개사 시험만 해도 응시생이 밀집된 수도권 지역 일부 사무소의 경우 직원 한명이 5백명이 넘는 수험생 업무를 처리했다.

더이상 필요 없는 국가기술자격증이 정리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응시인원이 10명 미만인 종목이 기술사 31개, 기능장 25개 등 모두 80개다.

공단은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뢰해 92개 국가기술자격 종목을 폐지하는 정비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자격증 존폐와 관련된 이해집단의 민원과 로비가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봉수 기자

lbso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