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세계전략 가속화:실리 챙기며 국제 이슈에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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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덩샤오핑(鄧小平)부터 장쩌민(江澤民)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기본적인 외교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숨기고 은거하여 때를 기다린다) 네글자로 요약됐다. 절대 남의 앞에 나서지 않고, 끝까지 엎드려 있다가 기회가 오면 단번에 낚아챈다는 전략이다. 중국식 실용주의가 배어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의 외교전략도 바로 '도광양회'다. 胡총서기는 취임 후 첫 연설에서 "개혁·개방 이후 지속해 온 '평화와 발전'이라는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천명했다. 한마디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선린외교를 지향하겠지만 발전, 즉 국가의 실리는 철저하게 챙기겠다는 얘기다.

다만 새 시대의 중국 외교는 좀더 적극적인 모습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선린과 실리 외에도 굵직굵직한 국제적 이슈들에 대해 중국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중국의 세계전략을 구체화 하겠다는 복안이다.

◇대미(對美) 전략=대미외교는 중국 외교의 핵심이다. 기조는 대화와 협조다. 틀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9·11 테러 이후 양국 관계는 밀월의 연속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反)테러 대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반테러에 동참한 대가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톡톡히 받아냈다. 요즘 미국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중국이 무력으로 억눌러도 모른 척한다. 테러 진압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으로서는 엄청난 소득이다. 북한·이라크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반테러와 핵확산 금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중국은 뒷문으로 이런저런 실리를 쏠쏠하게 챙겨왔다.

그렇다고 언제나 밀월관계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패권주의'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자 1996년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손잡고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결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 문제='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정책기조가 한층 더 중시될 전망이다. 이는 안정된 대미 관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반도가 불안해지면 중국 경제에도 역풍이 불게 된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같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중국의 역할'을 적극 모색한다는 쪽으로 외교방향을 틀었다. 최근 불거진 북한의 핵 개발 계획이 단적인 예다.

지난달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 계획에 관한 보다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라"며 미국의 요구를 일단 거절했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주석이 같은 달 22일 3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 江주석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해 가능한 한 여러 통로를 통해 핵 개발 계획 포기를 설득하겠다"며 유례없이 '구체적인 개입 의사'를 표명했다.

◇대만 정책=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은 중국에 큰 골칫거리다. 대만 독립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절대 중국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앞으로도 중국은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되 최악의 경우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대만정책의 원칙을 고수할 전망이다.

다만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양안 간 직항(直航) 등 경제·사회적 접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대만의 중국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정치분야의 교류도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단 대만 정치인의 미국 방문이나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만은 철저하게 차단할 생각이다. 대신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의 과격한 대응은 자제할 것이라는 게 중국 내 양안 문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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